파독 50주년을 맞아 고국을 찾은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28일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홍보관을 찾았다. 안상민 씨(맨 왼쪽) 등 일행이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기사가 실린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파독 50주년을 맞아 고국을 찾은 파독 광부·간호사들이 28일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홍보관을 찾았다. 안상민 씨(맨 왼쪽) 등 일행이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기사가 실린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8일 오후 수원시 매탄동 삼성전자 홍보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12월10일 독일을 방문해 함보른 광산을 찾아갔다가 파독(派獨) 광부·간호사들을 부여잡고 함께 우는 장면이 TV 화면에 나오자 안상민 씨(75)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안씨는 50년 전 당시 현장에 있던 200여명의 파독 광부·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때 난 혼자 한국에서 가져간 한복을 입고 있었지. 육영수 여사가 날 보더니 팔을 잡고 우시더라고. 두 분이 먼저 우시는데 모두가 같이 펑펑 울었어. 그날 우리는 박 대통령 내외에게서 ‘나라를 위해 뭐든 하겠다’는 영감을 받았지. 그날부터 우린 정말 더 열심히 일했어.”

옆에 선 부인 안춘복 씨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부인 안씨도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이들은 파독 50주년을 맞아 파독 광부·간호사 고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23일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기획한 ‘정수코리아’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애초 약속한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호텔과 식당, 관광일정이 줄줄이 취소돼 이들이 눈물겨운 투어를 하게 됐다는 소식에 한국관광공사와 포스코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기관이 나서면서 일정은 26일부터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와, 대단하네.” 이날 오후 삼성전자를 찾은 224명의 땀과 눈물의 산업전사들은 곡면 OLED TV, 85인치 UHD(초고화질) TV, 태블릿과 연동된 전자칠판, 투명 디스플레이 등 최첨단 제품들을 둘러보고는 곳곳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이들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1057명의 일부다. 1963년 1인당 국민소득이 79달러로 필리핀(170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시절, 정부는 이들을 파견하고 대신 3000만달러를 독일에서 차관했다. 당시 독일 광부의 한 달 임금은 국내의 7~8배에 달했다. 이들이 송금한 돈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국민총생산(GNP)의 2%에 이르기도 했다.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와 기업들은 50년 만에 우뚝 섰다.

"삼성전자·현대차 잘나가니 외국 사는 동포들도 대접받아"

이들 대부분은 고국을 떠날 당시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전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1970년대 초 독일에 갔다는 김상록 씨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이 잘하니까 외국에 살면서도 우리 동포들이 대접을 받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캐나다로 이주해 살고 있다는 김홍배 씨(1964년 광부 파견)는 “토론토에서도 휴대폰은 다 삼성 것을 쓴다”며 “이번에 한국에 오랜만에 간다고 하니까 옆집 필리핀 사업가가 너무 발전해서 아마 깜짝 놀랄 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1974년 간호사로 건너간 소병진 씨는 갤럭시탭을 들고 연신 삼성전자 곳곳을 찍었다. 소씨는 “어제 포항에 가서 포스코도 둘러보고, 오늘은 삼성전자를 직접 방문하니 뿌듯하다”며 “최근에 남편과 튀니지에 갔는데, 남편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삼성과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미스터 삼성’이라고 부르더라”며 웃었다.

이날 방문은 삼성전자로서도 뜻깊었다. 삼성전자는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R1 1층에 있는 홍보관을 이날까지 운영하고 문을 닫았다. 1980년 문을 열어 최근 한 해 3만명가량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던 홍보관의 마지막 손님으로 파독 광부·간호사들을 맞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4월 바로 옆에 자리한 최첨단 빌딩인 R5에 4층 규모로 확장한 홍보관을 새로 연다.

한편 파독 광부·간호사 고국방문단은 지난 26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 등을 방문한 데 이어 27일 포스코, 28일 삼성전자를 찾았다. 이들은 29일 현충원 참배와 한강유람선 투어, 환송만찬 등을 마지막으로 고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30일 각자 살고 있는 나라로 돌아간다.

수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