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 승려들이 2011년 7월 라싸의 포탈라궁 앞 광장에서 열린 티베트의 중국편입 60주년 기념식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한경DB
티베트불교 승려들이 2011년 7월 라싸의 포탈라궁 앞 광장에서 열린 티베트의 중국편입 60주년 기념식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한경DB
16세기 동몽골의 실력자 알탄 칸은 해마다 명나라를 침략했다. 명나라가 몽골의 주력 상품인 말을 팔 수 없도록 말 시장을 열어주지 않아서였다. 알탄 칸이 침략하면 살인과 약탈, 강간이 난무했다. 1550년에는 북경을 포위했을 만큼 세력도 강했다. 이렇게 견원지간(犬猿之間)이던 둘 사이에 1571년부터 평화가 찾아왔다. 왜 몽골은 더 이상 중국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티베트 때문이다. 1558년 북부티베트에서 겔룩파 승려 1000명을 사로잡은 알탄 칸이 승려들로부터 쇠남갸초에 대해 들은 뒤 그를 존경하게 된 것이다.

[책마을] 티베트하면 달라이라마밖에 모르는 이를 위하여
마침내 두 사람은 1578년 5월15일 중국 칭하이성의 칭하이호 남쪽 찹차(현재의 궁허현)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알탄 칸은 선행을 베푸는 열 가지 법을 지킬 것과 한족과 티베트인에 대한 약탈 행위를 엄금할 것을 선언했다. 이어 쇠남갸초에게 ‘와치르다라 달라이라마’라는 존호(尊號)를 주었다. 티베트불교에 달라이라마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와치르다라’는 신성하다는 뜻, 달라이라마의 ‘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이다. 쇠남갸초는 자신보다 앞서 환생했던 게뒨줍파와 게뒨 갸초를 제1대와 제2대 달라이라마로 규정하고 자신은 3대가 됐다.

중국 쓰촨대에서 티베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근형 씨(39)는 《티베트 비밀역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비롯해 티베트의 역사를 통째로 들려준다. 이 책은 국내 학자가 쓴 첫 티베트 통사(通史)다. 티베트 개국 신화부터 반중(反中) 독립운동까지 티베트 역사를 폭넓게 다뤘다.

티베트에 대한 인식이 망명 정부를 이끄는 달라이라마나 때 묻지 않은 성정의 사람들이 사는 독특한 불교 국가라는 단편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특히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티베트 내부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몽골 한반도 등 주변국과의 관계사도 정리해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북아 서북지역의 역사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토번(吐蕃)으로 불렸던 티베트는 우리와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티베트 왕조의 37대 임금 치데죽챈이 7세기 중엽 인도와 당나라에 불경을 구하는 외교사절단을 보냈다. 당나라로 간 사절단 다섯 명이 불경 1000권을 받아 티베트 돌아가는 길에 쓰촨성 청두의 정중사에 들렀다. 사절단은 두 달 동안 정중사에 머무르며 주지이던 무상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무상선사는 바로 신라 성덕왕의 셋째아들인 ‘김화상’이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을 통해 티베트 불교가 건너왔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조선과 티베트가 조우한 장면이 나온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조선사신단으로 파견된 연암은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마침 황제와 함께 있던 티베트의 제6대 판첸라마에게 머리를 조아리도록 강요당했다. 하지만 연암은 끝내 이를 거부했다. 천자(황제)에게는 조아릴 수 있어도 ‘티베트 중’에게는 조아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저자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9세기까지 토번시대의 신화와 전설, 왕조의 성립과 흥망, 권력의 암투와 전쟁, 불교의 유입과 사캬·카규·겔룩 등 종파불교의 등장,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의 대를 잇기 위한 환생 전통의 명암 등을 방대한 자료와 거침없는 논조,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풀어낸다.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가열되던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제국의 티베트 침략과 세 차례나 치러야 했던 중국과의 전쟁, 마침내 중국이 티베트를 접수하고 중국 정부에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를 보면 우리의 근현대사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국제사회에서 날로 커지는 중국의 힘을 생각하면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와 승려들의 분신이 잇따르는 티베트를 보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 티베트는 물과 기름이다. 이 사실을 1200년 전 중국인과 티베트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석을 세웠다. 중국인은 중국인의 땅에서, 티베트인은 티베트인의 땅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기관총을 난사해도 티베트가 월드컵에 참가하는 날은 온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