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문화예술 후원 25년…오히려 내 삶이 풍성해져"
“문화예술 후원에 정부와 대기업이 많은 돈을 쓰고 적극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에 후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겸손히 이 상을 받겠습니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67·사진)이 4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만년필로 유명한 몽블랑이 주는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받았다. 김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25년 전 재능 있는 친구들을 위해 작게 시작한 문화예술 후원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순수예술 전공자가 매년 4600명씩 쏟아지지만 국내에선 2000명도 수용하지 못 한다”며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음악 인재들이 지방 심포니에서 박봉을 받으며 고생하는 게 우리 문화예술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벽산그룹 창업자 고(故) 김인득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그는 세계적 수준의 현악 앙상블로 평가받는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을 주도했고, 2010년부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대미술관회 부회장, 한국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 한국화랑협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미술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1973~198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하며 젊은 시절을 건설업에 바친 김 회장은 “건설업은 ‘노가다’라 하지만 직원들이 사내에서 늘 음악과 미술을 접하도록 하자 기업 문화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예술은 좋은 직장을 만드는 하나의 툴(도구)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회장은 벽산건설 경영에서 물러나는 시련을 겪었던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좋은 ‘2세’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틈틈이 메모하고 있다고 한다. 70대가 되면 책으로 낼 생각도 있다고 했다. “2세가 너무 욕심 내 망하는 회사 수없이 보셨잖아요. 이익을 많이 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좋은 기업인데, 경영은 전문가들이 더 잘합니다. 2세들은 문화예술을 통해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상식에서 몽블랑이 특별 제작한 기념 만년필과 상금 1만5000유로를 받았으며, 상금은 전액 세종솔로이스츠에 기부했다. 몽블랑은 1992년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제정, 매년 한국을 포함한 세계 10여개국에서 시상하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