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보고 받을 때 최소 다섯번 "왜" 질문…중소기업 삼성이 '글로벌 삼성' 된 비결
“중소기업이 국내 전체 기업의 99%, 종사자 수로는 87%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현장을 가보면 너무 뒤처져 있어요. 삼성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똑같이 출발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벌어진 이유가 뭘까요.”

삼성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맡으며 40년 가까이 ‘혁신의 중심’에서 활약한 손욱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주임교수(68·사진)가 ‘삼성, 집요한 혁신의 역사’를 출간한 건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이어진 삼성의 집요한 혁신 과정이 담겨 있다.

16일 서울 여의도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손 교수는 “사업은 해오던 방식만 고집하면 발전이 없다”며 “1등을 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배우고 융합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성장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비료공업과 한국종합제철을 거쳐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전관(현 삼성SDI) 대표,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맡으며 혁신을 주도했다. 2008년부터 2년간 농심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형리더십개발원 이사장을 맡아 ‘행복나눔125(한 달에 한 번 선행, 매달 두 권 독서, 하루 다섯 가지에 감사)운동’을 펼치고 있다.

1993년 6월 글로벌 기업 벤치마킹을 위한 신경영 기행이 독일에서 시작될 때 손 교수는 이건희 회장의 수행팀장이었다. 올해는 삼성의 창립 75주년이자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20주년이기도 하다. 당시 임원들이 한꺼번에 사무실을 비우고 68일간 해외에 나간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불안해하는 임원들에게 이건희 회장은 ‘당신들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라고 했는데, 역시 귀국해보니 부장 이하 직원들끼리 일을 잘하고 있었다”며 “임원이 사무실에 앉아 감시하고 간섭하기보다는 현장을 보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을 그때 다들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청과 토론을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보고받을 때도 상대의 얘기를 꼼꼼히 들으며 적어도 다섯 번 이상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병철 회장이 산업화 초기 목표를 세우고 사람을 키우면서 ‘관리의 삼성’을 만들었다”며 “이건희 회장은 정보화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의 삼성’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 다음 단계가 ‘창의의 삼성’이라고 소개했다. 이건희 회장이 “아직 멀었다”고 끊임없이 위기를 강조하는 이유도 창의의 삼성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의의 삼성을 통해 ‘게임을 바꾸는 기술’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게 삼성의 과제라는 것이다.

손 교수는 “20세기 들어 이건희 회장 같은 변화의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은 흔치 않다”며 “그 과정을 함께한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17일 수요 사장단회의 때 참석자들에게 이 책을 나눠줄 예정이다.


글=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