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투자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중 얼굴’ 시리즈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김동유 씨(48·목원대 교수)를 안다. 2007년 11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경매에서 김씨의 작품 ‘마릴린 먼로’가 치열한 경합 끝에 491만9500홍콩달러(약 6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추정가보다 15배나 높게 팔린 그의 작품은 K아트의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5월에는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과 런던올림픽 기념전’에 그의 작품 ‘다이애나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대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주목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오는 30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김씨는 “천부적인 재능도, 연줄도 없었던 나였지만 세계 최정상급 화가들과 한 무대에 올랐다”며 “결코 위축되지도, 자만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며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 놀랐지만 저는 그저 충남 논산 작업실에서 일을 계속했을 뿐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종일 농사일을 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노동을 중시하거든요. 요즘도 아침 8시에 작업실에 출근해 12시간 가까이 작업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김씨는 작은 얼굴을 수백, 수천개 그려 또 다른 큰 얼굴을 만든다. 서로 다른 두 명의 얼굴을 오버랩시켜 하나의 ‘시대적 담론’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그는 “박정희 김일성 케네디 먼로 등 유명인의 이미지를 통해 권력과 명성의 허무함, 흥망성쇠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케네디와 먼로의 형태가 합해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죠. 보는 사람에 따라 케네디와 먼로의 염문을 연관시키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이미지들이 접해졌을 때 거기에서 생기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특유의 섬세한 회화력을 바탕으로 오래된 회화의 물감층에 생긴 균열을 모아 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오래된 명화의 균열을 캔버스에 직접 그리는 작업이다.

“바로크 시기의 명화를 찾아보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게 피에타, 성모상입니다.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명화의 크랙과 같은 회화의 주변적 요소를 부각시켜 시대의 영속성을 대변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번 신작의 손맛도 섬세하다. 오래된 명화의 표면 물감층이 세세하게 갈라진 느낌을 일일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그린 작품은 화면 전체를 모노톤으로 정제해 틈새의 미학을 살렸다. 온통 갈라진 틈을 그린 그림들은 빛바래고 낡은 명화를 대할 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