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산행에서 내려올 즈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에 이끌려 등산로 입구에 도달했다. 그곳에서는 서른명 남짓한 합창단원이 노을빛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야외공연 중이었다. 불현듯 ‘우리 직원들과 이 공연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연이 끝난 후 그들에게 우리 회사에서 공연해줄 수 있겠느냐고 제의했다. 몇 달 후 우리 회사에서는 이 합창단의 콘서트가 열렸고, 그 선율을 직원들과 함께 감상했다.

사내 명사 초청강연이나 대리점주 워크숍 등의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 필자가 평소 들었던 강연 가운데 임직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강연자를 직접 섭외한다. 패션이나 경영에 한정된 주제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 분야 전문가를 초대해 지혜를 듣는다.

이처럼 문화예술인 캐스팅 최고경영자를 자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미래 초석인 ‘창조력’을 다지기 위해서다. 지식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초경쟁시대에 접어들면서 차별적 경쟁우위 확보가 어려워져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창조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경영자들이 부쩍 인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여기서 얻은 지혜와 영감을 경영에 접목해 창조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필자도 서희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게 ‘클래식에서 배우는 리더십’에 대해 전해듣고 감탄한 바 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현악기를 가까이 두고 그 뒤에 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치하는데, 지휘자는 모든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일정한 높이의 단상에 올라 전 악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만이 지휘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여서 경영자가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소리를 듣고 그 요구사항 간의 균형을 잡는 마에스트로여야 한다는 배움이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상품의 기능보다는 꿈과 감성을 추구하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도래했다”며 사회 구성원의 삶이 윤택해질수록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패션 선진국 이탈리아를 봐도 문화예술 주목에 연유를 찾을 수 있다. 고대 로마문화를 이어받은 이탈리아의 자부심은 섬유, 디자인 등 패션산업을 발전시켜 구찌, 프라다 등 세계적 명품을 낳았고 결국 ‘패션강국 이탈리아’라는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던가.

서울 역삼동 패션그룹형지 사옥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전명자 화백의 ‘오로라를 넘어서’라는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전 화백은 아이슬란드에서 체험한 오로라의 신비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신비로운 색감과 변화무쌍한 패턴이 이채롭다. 계속해서 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열정과 변화의 영감이 샘솟는 듯하다. 이 감동을 임직원뿐 아니라 회사를 찾는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어 전시해 놓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진리와 탁월한 혜안이 잠재된 문화예술. 여기서 미래 창조의 원형을 찾을 것을 다짐해 본다.

최병오 < 패션그룹형지 회장 hj02@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