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후 군용 지프차의 디자인과 성능을 본떠 만든 지프차 루비콘과 랭글러는 세계 자동차 시장을 휩쓸었다. 그런데 랭글러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 차를 생산하던 크라이슬러사는 더 세련된 차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랭글러의 동그란 헤드라이트를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바뀐 디자인을 차갑게 외면해 랭글러의 판매는 급감했다. 미국 국민들에게 랭글러 지프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영웅이었다. 그런데 지프차의 외형을 바꿈으로서 전쟁 영웅에 대한 친근감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원래 디자인을 복원시키자 랭글러의 판매량은 회복됐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물은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무생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사물을 인격체로 착각하는 현상은 원시 단계부터 모든 문화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피리 부는 마케터》의 저자는 제품을 숭배하고 이성을 마비시켜 아무리 비싸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 ‘지름신’의 비밀을 인류학에서 찾는다. 저자는 “탁월한 마케터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은 능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쥐를 퇴치하고 아이들을 홀리는 데 음악을 사용했듯이, 훌륭한 마케터들은 종교 미신 등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숭배하게 한다는 것.

비싼 횟집에 가면 생선회 위에 얇은 금박지를 얹어놓는다. 사람들은 전자파로 더러워진 환경이 깔끔해지도록 자수정을 방에 놓기도 한다. 저자는 “사람들은 물질의 특성이 소유자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 것으로 여기는 마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를 마케팅에 활용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것이 다이아몬드다.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남아공의 드비어스사는 다른 보석에 비해 매장량이 많은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해야 진귀한 보석의 위치로 밀어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드비어스사는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 여성을 공략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여성들이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끼우면 다이아몬드의 영원성이 남편과 자신의 애정에 스며들어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게 한 것이다. 결국 다이아몬드는 결혼반지로 전 세계에 팔려나갔다.

지름신은 문화 마케팅의 산물이다. 저자는 미국 정보기관인 CIA가 냉전 시기에 행한 문화작전을 예로 들며 문화 마케팅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CIA는 유령 재단을 내세워 폴록, 로스코, 워홀 등 아방가드르 예술가들을 미국의 대표 미술가로 내세워 전 세계 투어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록펠러와 같은 미국 재벌을 동원해 작품을 사들여 이들의 몸값을 끌어올렸다. CIA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미국의 작가, 영화가, 사진가, 화가, 음악가를 후원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둬 뉴욕의 패션과 디자인 산업을 몇 백년 동안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와 동등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행한 문화 마케팅은 미국과 정치 체계가 달라 눈에 거슬리는 국가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차례로 무너뜨리는 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동화, 신화, 고전음악, 관습 등 소비자가 알고 있는 모든 문화는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게 하는 마법사다. 이 책은 지름신을 만드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과소비로 괴로워하는 소비자라면 이런 문화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지름신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