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다. 먼 바캉스 여행길을 앞두고 들떠 있을 때다. 한여름 더위에 갇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여행을 꿈꿨을까. 또 일제시대 이 땅의 여름 풍경은 어땠을까. 이 물음에 답해줄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과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다.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다. 길을 나섰거나, 나서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강토를 돌아본 기록을 모았다. 흔히 생각하는 일상적 여행 범주에 들지 않는 이야기도 여럿이다. 방안에 앉아서 그림과 글로 다른 곳을 여행하는 와유(臥遊), 세상으로부터 격리돼 멀리 떠나야 했던 유배, 지방 행정을 정찰하러 가는 암행어사 길도 여행으로 보고, 이들 여행이 이뤄진 시대의 역사를 찬찬히 살폈다.

유배길이 고난의 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롭다. 명종 때 을사사화에 연루돼 경북 성주로 유배를 간 이문건을 통해 유배길은 지방관리들의 배려 속에 유람(?)을 떠났던 길이었음을 보여준다. 유배길에 오른 죄인들은 다른 데로 도망갈 수가 없어 어느 정도 자율적인 노정이 보장됐다고 한다. 호송 원칙과는 달리 압송관도 유배인과 따로 떨어져 길을 갔다고 한다.

길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와유를 통해 상상의 여행길에 올랐다. 와유는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 등을 보며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림 외에 산수를 유람한 기행문을 읽으며 와유를 했고, 돌로 만든 인공산인 석가산(石假山)을 보며 상상의 여행을 즐겼다. 이것도 어려우면 집이나 방 이름에 바다와 강을 끌어들이는 와유의 방식도 택했다고 한다.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동양여행 기록이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말 처음 한국을 찾은 키스는 이후 한국을 대상으로 작품활동을 펼쳤다. 1921년과 1934년 두 차례에 걸쳐 서양 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전통혼례를 보고 그린 ‘신부행차’와 원산에서 만난 노학자를 모델로 해서 그린 ‘선비’ 같은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힘든 금강산을 왜 올라야 하느냐고 투덜거리다가도 절의 온돌방에 누워 한국인의 지혜에 감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중국 필리핀 일본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과 여행기도 인상적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