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유럽에서는 이런 견해를 가진 지식인들이 있었다. 국가 간 경제 통합이 너무 긴밀하게 진행돼서 더 이상 심한 정치적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 견해는 몇 년 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남으로써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다.

현대 유럽은 어떤가. 지금 유럽연합(EU)은 통화 통합으로 과속한 결과 오히려 경제 통합이 국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과거 같은 양상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낮다. 프랑스 같은 나라조차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지만, 적어도 서유럽 국가들 간에는 갈등의 근본 원인인 ‘민족주의’ 문제가 20세기 두 개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해소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17세기 30년전쟁 이후 종교전쟁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어떤가. 20세기판 종교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무역과 투자를 통해 긴밀하게 통합됐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중국을 보자. 중국의 공산혁명 자체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이 톈안먼 광장에서 건국을 선포할 때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우리는 다시는 모욕당하는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였다. 공산체제가 무너진 지금 중국에 남은 것은 민족주의다. 그런 중국인의 뇌리에 박힌 “당한 모욕은 갚아 주겠다”는 의식은 20세기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의 그것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지금 중국의 행태는 거칠다. 동북공정 같은 저열한 행태는 문화를 중심으로 주변국을 포섭하던 과거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건국 초기 저우엔라이 같은 사람이 보였던 대전략가의 모습도 결국 중국이 약할 때의 모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어떠한가. 중국인이 “당한 모욕은 갚아 주겠다”는 일차적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나 사죄를 할 생각은 없다. 그 대신 일본은 핵 무장과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 문제도 같이 얽혀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것은 한국이 미국 일본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려 한다는 중국인의 인식을 북한이 파고든 결과가 아닌가.

지난 60여년간 한국이 ‘대약진’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나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호황이었고 그 흐름을 잘 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탈식민지화로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대등한 민족국가가 될 수 있었고, 그런 바탕 위에서 동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치·경제적 사건은 그런 조건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면서 세계 경제가 지난 60여년 같은 호황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 갈등이 분명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계 경제에 대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갈등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그 첫째는 물론 외교·안보 쪽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보인 실수 같은 것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경제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경제통합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일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속도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미 FTA의 추진 동기가 결국 정치였던 것처럼 한·중 FTA도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잘되지도 않을 것이다. 경제 통합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엄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통합이 정치적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다. 1차대전은 유럽국가들 간의 긴밀한 경제 통합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었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