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높아진 은행 문턱…1200만 중산층, 돈 빌리기 어렵다
중견 건설업체에 근무하는 임모 과장(39)은 지난달 한 시중은행에 신용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아버지 병원비로 1000만원이 필요했지만 은행 창구 직원은 “본점의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임 과장은 결국 저축은행에서 연 22%의 금리로 1000만원을 빌렸다.

그는 “직업이 있고 신용등급도 작년과 같은 6등급인데 대출을 거절당해 막막했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로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올 들어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가계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은행들이 위험 관리를 위해 신용대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5~6등급인 서민들이 은행에서 신용으로 돈을 빌리지 못하고 2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다. 연소득 2000만원 이하 저신용자들은 서민금융지원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이들 서민은 갈수록 은행 거래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49조9955억원으로, 작년 4분기(52조6억원)보다 2조51억원(3.9%) 감소했다.

신용대출 잔액이 감소한 것은 은행들이 신용등급 5~6등급인 대출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깐깐히 한 결과다. 은행들의 신용대출은 신용등급이 1~6등급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이 중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수준인 5~6등급에 대한 대출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신용평가 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개인 신용평가 대상 중 신용등급이 5~6등급인 사람은 모두 1176만8357명(29.1%)에 달한다. 신용평가 체계상 5~6등급은 ‘일반등급’으로 분류되지만 은행들은 이들을 신용관리에 주의가 필요한 등급으로 평가한다. 반면 전반적으로 개인 신용대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신용등급이 1~4등급인 ‘우량’ 고객에 대한 대출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은행의 우량 직장인 대상 대출상품인 ‘직장인 신용대출’의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1조2196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4.4%(512억원) 증가했다. 신한은행이 신용도가 높은 개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엘리트론’도 지난달까지 대출 잔액이 3조3617억원으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5.6%(1783억원) 늘었다.

올 상반기 중 은행들이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해주는 ‘새희망홀씨’ 대출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하나은행이 작년 12월보다 71.7% 늘어난 것을 비롯해 우리은행 43.2%, 국민은행 31.7%, 신한은행은 21.2% 각각 늘었다.

은행들이 대출을 옥죄면서 서민들이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상호금융(단위농협 등)은 대출이 지난해 말 157조1719억원에서 올 4월 말 158조2942억원으로 1조원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사는 5조129억원, 새마을금고는 3347억원, 신용협동조합은 577억원 각각 늘었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가계대출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이 64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에 따르면 5월 가계대출은 642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2000억원 증가했다. 이로써 올 가계대출은 3조1000억원 순증하며 지난해 12월(639조6000억원) 이후 5개월 만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은행과 제2금융권과의 금리차가 큰 상황에서 서민들이 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리 차이를 감안해 은행들이 10%대의 대출 영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균/서정환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