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라파엘로(1483~1520)는 화가 중의 화가였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화가의 신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달리 작품의 정확한 실체는 최근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유는 라파엘로 특유의 공동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어느 것이 단독으로 그린 것인지, 어느 것이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그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스페인의 자랑 프라도 미술관이 기획한 ‘라파엘 후기’ 전은 이 위대한 작가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로마에서의 마지막 7년간(1513~1520)의 작품을 통해 라파엘로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규명한다. 지난 12일 개막 테이프를 끊은 이 특별전은 라파엘로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절대적 지원과 함께 세계 40여개 미술관·박물관 및 개인 소장자의 협조를 얻어 이뤄졌다. 출품작은 유화 44점, 드로잉 28점으로 라파엘로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라파엘로는 무뚝뚝한 미켈란젤로나 ‘따로국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달리 사회성이 뛰어나고 외모도 준수해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뒤이은 레오 10세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유력자의 호의를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유능한 조수를 고용, 공동 작업이라는 묘책을 짜낸다.

그는 주로 그림의 아이디어를 내고 화면을 구성한 뒤 탁월한 실력을 갖춘 조수들에게 그림의 제작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줄리오 로마노(1499년께~1546)와 지안프란체스코 페니(1496년께~1528)는 그중에서도 유능한 조력자들이었다. 물론 단독으로 제작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상당수 작품은 조수가 제작한 작품에 약간의 마무리 손질을 덧붙인 것이다. 그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한창 때는 50여명의 조수와 제자들로 그의 아틀리에는 북새통을 이룰 지경이었다.

전시 구성 역시 라파엘로 공방에서 이뤄진 공동 작업의 비밀을 캐는 데 집중됐다. 이를 위해 라파엘로의 제단화, 대형과 소형의 마리아 및 성가족 그림들, 줄리오 로마노, 초상화, 현성용(顯聖容예수가 다볼산에서 성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것) 등 6개 소주제로 구분했다. 로마노의 코너와 페니가 그린 ‘현성용’ 코너를 따로 마련한 것은 라파엘로의 작품과 조력자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주려는 의도다. 특히 드로잉 작품과 엑스레이 및 적외선 투시도를 함께 전시, 라파엘로 작품의 고유한 특징과 제작 의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출품작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볼로냐 국립미술관 소장의 제단화인 ‘성 세실리아의 법열’(1515~1516). 등장인물의 매력적인 표정과 완벽하고 조화로운 구성미가 보는 이의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가 미술사 입문서에서 자주 접한 루브르 소장의 명품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의 초상도 관객을 맞이한다. 르네상스 궁정인의 표상이었던 카스틸리오네의 온화한 성품을 실제로 마주하는 듯하다.

특히 프라도 미술관 소장품으로 벨라스케스, 고야 등 스페인 예술가들의 명성에 가려져 있던 명품들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이 중 ‘갈보리 가는 길’(1517)은 최근 폴 조아니데스, 톰 헨리 같은 세계 최고의 복원 전문가를 동원하여 보수한 것으로 복원 후 처음으로 공개된다. ‘물고기가 있는 마돈나’와 ‘추기경의 초상’도 함께 선보인다.

프라도 미술관 이탈리아 및 프랑스 회화 부장인 미겔 팔로미르는 이번 전시를 “서양미술사상 최고의 화가였고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라파엘로의 회화세계를 공동 작업자들과의 비교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한 역사적인 전시”라고 평가하고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그동안 벨라스케스와 고야로 기억된 프라도 미술관이 ‘라파엘로의 프라도’로도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9월16일까지 이어진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