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 한강신도시 구래동에 있는 우미린 아파트. 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는 뛰어난 조경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황량하다. 부동산 슈퍼마켓 은행이 있는 작은 상가건물 하나 외에는 별다른 기반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최근 시중은행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파트 계약자 500여명은 지난달 22일 시공사인 우미건설과 중도금 대출을 해준 우리은행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계약해제 소송과 함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가 다른 아파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은행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 인천 청라지구, 남양주 별내신도시, 고양 식사지구 등 서울에서 반경 30~50㎞ 지역에 조성 중인 2기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중심으로 아파트 계약해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데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계약자들과 건설사, 은행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 일대에서 계약해제·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단지는 30곳이 넘는다. 단지당 소송을 진행하는 가구는 150~500여가구로 전체 소송 참여 가구는 1만여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구당 평균 대출금이 1억5000만~2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소송 금액은 2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파트 계약자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소송을 하는 데 따른 실익이 있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김상국 우미린 공인중개사 대표는 “현재 시세는 분양가에 비해 10~12%가량 떨어졌다”며 “떨어진 집값과 학교 도로 상권 등 주변 시설 미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면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을 할인받아야 소송 목적이 달성된다”고 전했다.

분양계약 해제를 원한다는 소송을 내 건설사를 압박하겠다는 것이 계약자들의 1차 목적이지만, 이를 이루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미린 아파트의 소송을 대리하는 문종진 변호사는 “중도금을 내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면 중도금 대출의 연대보증을 선 건설사가 자금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의 경우 중도금 대출 중 2억원까지는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선 상태여서 건설사의 부담은 크지 않다.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연체이자 ‘폭탄’을 맞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이 아파트 계약자 A씨는 “중도금 대출 연체이자가 한 달에 300만원씩 나오고, 지난 3월5일부터 잔금납부 기한이 지나 잔금에 대한 연체이자도 매달 210만원가량에 이른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계약자 B씨는 “지난달부터 은행에서 가압류까지 들어와 통장이나 기존 부동산도 몽땅 묶인 상태”라며 “소송이 진행 중이라 당장 신용불량자가 되지는 않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계약자 C씨는 “차라리 손해배상 소송을 했으면 큰돈을 받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배상을 받고 끝날 수 있었는데, 계약해제 소송을 제기해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며 “변호사는 건설사를 압박하라는 얘기만 계속 하는데 답이 안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은행은 최근 이 아파트를 계약한 뒤 입주하지 않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가압류를 했다. 계약자들의 통장과 각종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가 이뤄지자 주민들의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쌓이면서 아파트에는 소송가구 모임과 소송으로 인해 생긴 연체이자 등 피해를 우선 회복해야 한다는 모임이 각각 구성되는 등 주민들 간 갈등도 심각해진 상태다.

건설사와 은행들은 계약자들이 최종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획소송을 통해 계약자들을 부추겨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 적지 않다”며 “소송에서 지면 고율의 연체이자까지 내야 해 자칫하면 계약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은/김일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