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지휘하는 뛰어난 존재는 필요치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시장을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화하는 사회적 과정은 하이에크의 표현대로 ‘경이’ 그 자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10명의 경제학자를 인터뷰한 책 《지식의 탄생》의 저자 카렌 호른이 밝히는 ‘출간의 변’이다. 학계를 일종의 시장으로 비유해 지식이 생성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조명하려는 시도다.

한 권의 책에 모든 지식을 담는 건 불가능하다. 저자는 지식의 분야를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으로 한정하고, 담아내는 글의 형태를 인터뷰로 설정했다.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는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권위있다고 여겨지는 노벨상 수상자로 정했다. 저자는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다.

이 책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성취를 깊이 있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인터뷰라는 형식의 특성상 어렵기도 하지만, 저자가 학문 자체 못지않게 학자 개인의 역사와 환경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대학자들이 그들의 사상을 갖게 된 어린 시절 환경과 시대적 배경도 학문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런 인식은 경제학을 어려워하는 일반 독자들이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09년 타계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한창 호황기일 때인 1915년 태어났다. 미국은 참전하지 않았지만 동맹국들이 철강을 사들였기 때문에 지역 제철소는 쉬지 않고 돌았고, 곡물 값이 올라 곡물을 생산하는 농가의 소득도 올랐다. 자연히 소비도 늘어 경기는 계속 상승했다. 케인스의 승수 이론이 작동한 것이다. 경제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전쟁 상황의 기억은 새뮤얼슨이 경제학에 흥미를 갖게 되는 원초적 기억이 됐다.

정부를 구성하는 관료나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들의 주된 동기는 그들 자신의 사익이라는 공공 선택 이론을 주창한 제임스 뷰캐넌은 태생적으로 미국 남부인의 기질을 가졌다. 테네시주에서 태어나 북부의 상징인 링컨을 싫어하는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고, 해군에서도 동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남부인 특유의 독립적 기질을 강하게 가진 뷰캐넌이 ‘정부는 자비로운 존재’라는 20세기 중반의 믿음을 의심한 건 어찌보면 필연적이다.

학자들의 경제학적 성취의 내용도 충분히 소개된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이 이해를 돕는다. 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육성으로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부족한 설명은 저자의 각주로 메운다. 하지만 각주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듯싶다.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경제학 서적의 성격보다 ‘인터뷰 모음집’의 느낌이 더 강하다. 어렵고 따분하게 느끼기 쉬운 경제학 대가들의 연구실과 자택에서 대화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고한 새뮤얼슨의 인생이 담긴 인터뷰를 보는 즐거움과 아련함은 덤이 아닐까.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