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건희의 패러독스경영, 중용의 도와 통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패러독스경영’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획일적인 이분법 논리가 판을 치는 우리 현실에서 양면적인 패러독스경영을 잘하기는 쉽지 않다.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질(質)경영을 강조하니까 양(量)경영은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기업 경영에 있어서 질과 양, 매출과 이익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는 없다. 외견상 상충되는 요소를 잘 조화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일류가 되기 어렵다.”

이 회장의 ‘역발상 경영’은 사물의 양단을 두드려 활용한다는 중용의 사상과 일치한다. 중용의 핵심은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을 조화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찍이 노자는 ‘크게 정교한 것은 소박함과 같다(大巧若掘)’고 했다. 공자는 옛 것과 새 것 간의 중용을 강조했다.

중용은 내부 경영뿐 아니라 외부 고객과 교감하는 마케팅에도 적용할 수 있다. 마케팅의 양단에는 고객에게 도달하는 물적 요소와 고객과 상통하는 심적 요소가 섞여 있는데, 이들을 융합하면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샴푸 ‘려’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탈모 방지에 효과가 있는 백자인이란 성분을 개발한 뒤 용기 디자인을 도자기 모양으로 형상화해 옛 여인들의 풍성한 머리 비결이라며 소비자들에게 접근했다. 탈모치료용 제품들이 경쟁하던 시장에 탈모 예방 샴푸로 자리매김하며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이는 공자의 ‘명색통달(名色通達)’로 해석할 수 있다. 컨셉트를 일컫는 ‘명’과 물리적 제품을 뜻하는 ‘색’을 일치시켜 고객과 소통함으로써 제품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다.

《마케팅을 공자에게 배우다》는 회사 경영과 제품 마케팅의 원리를 동양의 고전에서 찾아낸 경영서적이다. 동양의 지혜로 서양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한 삼성뿐 아니라 LG 휴대폰의 미국 진출,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경영철학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개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분석과 분리를 근원으로 삼은 서양 이론과 달리 동양 사상은 만물이 서로 연관돼 있으며 통합과 중용의 가치를 실현할 것을 역설한다.

저자는 서양 마케팅이론의 문제점을 철학의 부재에서 찾는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거나 실행할 때 전통적 투입 요소로 4P를 들고 있다. 제품(product) 가격(price) 판매촉진(promotion) 유통(place)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모두 물질적 요소로 심적 요소를 배제했다.

동양 사상은 사물과 현상을 음양의 양면으로 파악함으로써 소비자의 마음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공자의 충서(忠恕) 사상을 마케팅에 적용하면 정직하게 가치를 제공(忠)하고, 소비자와 진심으로 동감(恕)하라는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