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90분 열강 "밥보다 꿈 좇으세요"
붉은 재킷에 짧은 머리.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듯한 호피무늬 스카프. 연신 강단의 좌우를 오가며 열변했고 한시도 손동작을 멈출 줄 몰랐다. 국제구호 전문가 한비야 씨(54·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2012학년도 1학기 교양과목 ‘국제구호와 개발협력’ 강의를 맡은 그가 7일 이화여대 캠퍼스복합단지(ECC)의 B146호 강의실에서 90분 동안 첫 강의를 했다. 초청 특강을 수없이 다닌 한씨지만 정규강좌 강의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씨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수강신청하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강의시간을 오전 8시로 잡았다”며 첫 강의의 운을 뗐다. “이 아침에 교양과목을 들으러 여기 온 여러분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강의실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하지만 그 ‘제 정신이 아닌 열정’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이미 가슴에 숯덩어리를 갖고 있을 겁니다. 저는 거기에 불만 댕기면 돼요. 우리가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전국을 불덩어리로 만들 수 있어요. 나아가 전 아시아를, 내친 김에 전 세계를 사랑과 열정의 불바다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다. 첫날부터 강의실을 휘어잡았다.

한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낭만주의자’다. 이름을 처음 알리기 시작한 것도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1993~1999년 세계일주를 하면서였다. 여행담을 묶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출간했고 이 책이 인기를 얻으며 ‘국민 멘토’로 떠올랐다. 2001~2009년에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했다. 현재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UN CERF) 자문위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장, 정부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내고 있다.

한씨는 “개발협력과 국제구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이 둘을 묶은 강의가 없었다”며 “이번 강의가 한국의 구호 전문인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총 16회의 수업 중 한씨는 국제구호를 주제로 8회만 강의하고 나머지 절반은 김은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이 개발협력을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씨는 학생들에게 ‘난민촌 24시’ 등 체험 과제를 내줄 계획이다. 학생이 스스로를 긴급구호 대상이라고 가정하고 최소한의 물·식량·장소 등으로 하루를 살아보는 생존체험이다. 구호현장에서 오염수를 음료수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정화약’도 물에 섞어 마시게 된다.

한씨는 “생존경쟁에 몰입하는 게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며 “오늘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에게서 보이듯이 알고 보면 순수하게 꿈을 좇는 마음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꿈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며 “적어도 젊을 때는 밥보다 꿈을 좇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꿈을 크게 꾸고 그것을 향해 가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안 하면 꿈을 이룰 확률이 0%지만 일단 움직이면 50%입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