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투자 기준은 창업 아이템 아닌 '실행력'
많은 사람들이 창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아이디어’ ‘아이템’을 꼽는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벤처기업인과 벤처 캐피털리스트(VC)들은 창업 과정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맹신’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사업 초기에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행 못하면 ‘그림의 떡’

국내 대표적 벤처 인큐베이팅업체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는 “창업경진대회용 사업계획서는 실제 사업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단언한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눈에 띄는 아이템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사업계획서에 필요한 것은 철저한 시장 분석과 실행 전략이다.

권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자들 가운데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형식논리에 빠져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처음에 결정한 ‘비즈니스 모델’이 실패하면 나중에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롯데유통사업본부 LHP사업팀에서 일하는 승영욱 씨는 2008년 골프중계방송에서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해 홀컵에 광고를 붙이는 사업으로 창업을 했다. 발명전 특허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정부 지원금 3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은 실패했다. 아이디어를 현실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제약들 때문이었다. 홀컵 광고를 만들려면 각각의 골프대회를 후원하는 스폰서 회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다. 대회 주최측과 골프장, 방송사와도 협력이 필요했다. 이 모든 일을 신생 벤처가 무난하게 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승씨는 사업을 포기했다.

그는 “미국 ESPN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관심만으로 사업을 진행하기엔 너무 걸림돌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

창업 아이템보다는 사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실행력이 투자의 기준이라고 VC들은 공통적으로 대답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개발회사인 원더의 강지호 대표(27)는 “창업 6개월이 지나면 최초 사업계획서 내용의 3분의 1은 그냥 휴지조각이 돼버리기 일쑤”라고 전했다. 특히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선 1~2개월마다 사업 방향을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처음 아이디어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셈이다.

모바일 소셜커머스 업체인 로티플을 창업했던 김동주 씨(30)는 “자신이 가졌던 최초의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도 창업 초기 본인의 사업 모델이 논리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해 영업에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벤처기업인들은 창업은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입을 모은다.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과 구성원 간의 결속력, 이들이 갖고 있는 사업에 대한 의지 등이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것. 벤처 인큐베이팅 업체인 패스트트랙 아시아의 김범섭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벤처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일체성”이라며 “벤처 투자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창업자가 갖고 있는 스토리나 배경 등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승우/고은이/은정진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