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종교의 다양한 신화들은 종교인들에게 ‘참’으로 받아들여져 그들의 삶의 형태를 만드는 기능을 했다.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신화는 과거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이야기 정도로만 인식된다. 유요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그러나 “종교적 인간의 신화는 은폐되고 위장된 형태로 현대인에게 계승됐다”고 주장한다.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내용은 문학, 만화, 영화 등 여러 형태의 이야기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슈퍼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슈퍼히어로를 다룬 만화나 영화의 모티브도 신화 속 영웅의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우리시대의 신화》에서 종교학의 시선으로 문학을 들여다본다. 그는 “소설에는 인간에게 가장 심오하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종교적 성찰과 상징이 포함돼 있다”며 “소설은 신화의 주제와 소재들을 끊임없이 차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위기와 한계상황, 특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가 오랜 세월 채용해온 주제라고 설명한다.

그는 현대 소설을 종횡무진하며 그 속의 신화적 요소와 인간의 종교적 면모를 심도 있게 읽어낸다. 텍스트로 삼은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코맥 매카시의 《로드》,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오쿠다 히데오의 《면장 선거》,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 밀란 쿤데라의 《불멸》,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 김훈의 《공무도하》 등 소설과 윤태호의 장편만화 ‘이끼’다.

그는 작품 속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종교가 문학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이야기한다. 예컨대 《1984》에서는 에밀 뒤르켕이 말한 사회와 종교가 공유하는 ‘성스러움’의 개념이 실현된 모습을 읽어낸다. 《공무도하》에서는 작품 속 ‘강’이 피안을 넘어서는 경계를 의미하는 전통적인 신화적 코드임을 밝히면서 당대의 야만과 싸우는 인간의 태초적 원형을 끄집어낸다. 종교와 문학이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며 인간과 문학을 더 깊게 이해하려는 젊은 종교학자의 시도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는 “소설은 신화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갖고 있으며, 일상과 구분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며 “이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