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유럽위기, 독일이 리더십 발휘해야
지난 28일에 루머가 하나 떠돌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채무보증을 통해 유럽중앙은행(ECB)으로 하여금 6000억유로의 이탈리아 국채를 사 주게 했다는 것이다. 발원지는 이탈리아의 어느 신문이라는데 곧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요즈음 유럽 위기를 보면서 1930년대의 대공황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도 처음의 충격에서 회복되는 듯하던 경제가 몇몇 고비에서 대처를 잘못하면서 대공황으로 갔던 것이다. 이탈리아가 국가부도를 내게 되면 2008년 리먼사태와 비교가 안 되는 폭풍이 밀어닥칠 것이다. 그 결과 유로존이 해체되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이번 루머는 그런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빨리 이탈리아 위기가 해결되기를 바란 데서 나온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위기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IMF의 보증을 받을 필요도 없이 ECB가 이탈리아 국채를 사 주면 된다. 지금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는 그리스와 달리 국가채무의 변제능력(solvency)이 아니라 유동성(liquidity)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탈리아와 영국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은 이탈리아보다 재정상태가 더 나쁜데도 국채 금리는 이탈리아의 반 정도다. 영국 국채는 잉글랜드은행이 돈 찍어서 사 줄 수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ECB에 그런 역할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탈리아 다음의 위기 국가로 지목되는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물론 ECB도 할 말은 있다. 특정 국가에 구제금융을 주는 것은 그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제금융이 아니고 그냥 거시적으로 자금 공급을 늘릴 수도 있다. 더욱이 특정국가에 구제금융을 주지 않는다는 유로화 출범 당시의 약속은 이미 다른 쪽에서 깨졌다. 유럽재정안정기금을 통해 구제금융이 제공된 것이다. 거기에다 유럽재정안정기금 등 재정을 통한 구제금융은 다른 나라의 재정도 부실하게 만들어 오히려 ‘불길이 번지는 통로(fire-channel)’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ECB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ECB가 왜 이러는가. 독일이 그 구제금융과 확장적 통화정책을 단호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독일 국민에게 유로 출범 전만큼의 물가안정과 독일이 다른 나라의 방만한 재정 운용 결과를 떠안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유로를 발족시켰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것이 ‘70년 만에 오는 위기’라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붕괴할 위험에 처했는데 물가부터 챙기는 행태는 대공황 때 금본위제를 고집한 각국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위기에 처한 나라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 책임을 따지는 것도 공황의 위험을 걷어내고 난 다음의 일이다.

독일은 ECB가 적극적 통화금융정책을 펴는 것을 허용하고, 스스로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재정으로 보나 국제수지로 보나 유럽 국가 중 여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자신도 2008년 위기 후 지금까지처럼 동아시아로의 수출에 기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유럽 경제 전체가 성장해야 세수가 늘어 국가채무를 줄일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기대하는 ‘리더십’ 아닌가. 그것은 세계가 같이 얽혀 있는 상태에서 독일이 세계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간 국제적 투기자본의 발호 하에서 그것을 비호하는 미국과 영국에 비해 건실한 산업자본의 기반 위에서 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독일은 세계의 ‘인심’을 얻은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독일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유럽의 리더로서는 물론이고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자세라는 점에서 갈 길이 먼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28일의 루머는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결국 밉더라도 미국 주도하의 IMF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잠재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