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치 사납금 버는데…" 거부하기 힘든 '폰 밀거래'
"스마트폰,스마트폰!","5만원에서 30만원!"

지난 3일 새벽 2시,서울역광장 앞.막 서울역을 빠져나온 승객들을 기다리는 수십대의 택시 사이로 30대 초반의 남성이 명함을 돌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1시간 뒤인 새벽 3시,이번에는 20대 중반 앳된 얼굴의 남성이 길게 줄을 선 택시를 훑듯이 지나며 '각종 스마트폰 삽니다'라고 적힌 명함을 나눠줬다. 이처럼 분실 스마트폰을 사들이기 위해 택시기사들을 유혹하는 손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택시기사 주모씨(48)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명함을 받는다"며 "경기불황으로 사납금 채우기도 힘든 상황이라 (스마트폰을) 주우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택시에 놓고 내린 시가 90만원짜리 스마트폰이 주인에게로 좀체 돌아가지 않고 있다. 분실된 스마트폰을 사들여 중국에 다시 밀수출하는 전문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아예 찜질방 등을 돌면서 스마트폰만 골라 훔치는 도둑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최신형 아이폰 4와 갤럭시S2 등을 20만~30만원에 사들여 상태에 따라 최고 50만원 선에 중국 밀수업체에 넘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잃어버린 일반 휴대폰은 사례금을 받고 찾아주지만 이틀치 사납금을 챙길수 있는 스마트폰을 주웠을 때는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일부 택시기사가 양심을 팔다 적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이폰 · 갤투 20만원…연간 밀수출 1500억원

"이틀치 사납금 버는데…" 거부하기 힘든 '폰 밀거래'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전 세계적으로 선보인 2009년 1만2279건이었던 휴대폰 분실신고는 2010년 6만2307건,올 들어서는 8월까지만 19만998건으로 크게 늘었다. 경찰청은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분실신고된 휴대폰이 28만9500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009년에 비해 23배나 늘어난 수치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하지 않는 것까지 감안하면 연간 30만대의 스마트폰이 분실된다"며 "이를 국내에서 거래되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중국으로 넘기는 금액은 1500억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분실 스마트폰의 매매가격이 용돈벌이 수준을 넘어서자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되돌려 받기는 힘든 상황이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아이폰 사설 수리업자 김모씨(32)는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위치추적 서비스도 전원을 꺼버리면 소용이 없다"며 "비밀번호를 풀고 중고 아이폰이 국내보다 30% 정도 비싸게 팔리는 중국 등지로 밀반출하면 상황은 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강남역 등 술 취한 고객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한 곳은 스마트폰 불법 유통업자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기자가 만난 분실 스마트폰 매입업자 A씨는 "아이폰 4나 갤투(갤럭시S2)는 깨지거나 흠집이 난 부분이 없으면 30만원까지 쳐줄 수 있다"고 은밀히 제안했다. 그는 "분실된 스마트폰은 곧바로 중국으로 나가 경찰에 붙잡힐 염려는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전화할 때마다 다른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만나는 장소를 계속 변경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서울 장안동에서 활동하는 스마트폰 장물업자 B씨는 보다 상세하게 휴대폰 밀반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전원을 끄고 휴대폰 뒷면에 있는 범용가입자식별모듈(휴대폰의 개인정보를 저장한 장치인 유심칩)을 빼는 등 휴대폰 세탁을 거친 뒤 중국으로 넘어 간다"며 "인천항의 보따리상 등을 통해 중국으로 밀반출하기 때문에 역추적당해 붙잡힐 일은 없다"고 귀띔했다. 김춘강 인천 서부경찰서 강력1팀장은 "최근 택시기사로부터 사들인 스마트폰을 두 배 가격에 중국으로 밀반출한 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며 "영업이 잘 안돼 사납금 내기도 힘들어 순간적으로 돈 욕심을 낼 수 있는 택시기사들의 현실을 악용했다"고 말했다.

◆유심칩만 바꾸면 중국 · 동남아서 'OK'

국내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 대부분은 해외에 나가더라도 '유심(USIM)칩'만 바꿔 끼우면 사용이 가능하다. WCDMA(이동통신 무선 접속 규격으로 화상통신이 가능한 3세대 이동통신) 방식을 사용하는 국가 간에는 얼마든지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SK텔레콤 기준,KT는 지난해 10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아이폰(3G,3GS)은 유심 잠금장치인 컨트리록이 설정돼 있어 국내 통신사들을 통해 국내에서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했지만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사용하려면 비싼 로밍비용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반발이 거세지자 휴대폰 컨트리록 기능을 없앴다. 유심칩을 제거하면 해당 스마트폰을 해외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기계'가 된 배경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대폰 분실 신고가 들어오면 휴대폰 고유의 일련 번호 때문에 국내에서 통신용으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지만 통신사도 다르고 기지국도 다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폰에 설정돼 있는 비밀번호도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품성 떨어지면 해체 후 부품으로 재활용

해외로 수출하기 힘들 정도로 외부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스마트폰은 해체돼 수리가 필요한 스마트폰 부품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용산 전자상가의 복수 관계자들은 "아이폰 부품이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수리업자들은 중고 아이폰을 분해해 부품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폰 정품은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소량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분실된 스마트폰 부품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습득한 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MP3용으로 사용하더라도 점유이탈횡령죄가 적용되며 이를 팔면 장물거래죄가 된다"며 "꼭 훔치지 않더라도 분실된 물품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