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말 발표한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을 관계부처인 경찰청과 제대로 합의도 하지 않은 채 섣불리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 대책 중 '가정폭력사범에 대한 경찰의 주거진입권(피해자 대면권) 인정' 항목을 놓고 경찰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성부는 "모든 관계부처와 이미 합의가 끝났다"며 지난 5월24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을 일방적으로 보고하기까지 했다. 이 대책엔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피해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경찰의 주거 진입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는 가정폭력이 의심되더라도 경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야만 주거지로 진입이 가능해 초기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었다. 당시 브리핑을 했던 김교식 여성부 전 차관은 "경찰의 주거진입권 인정은 1년 동안 경찰청 등 관계부서 태스크포스(TF)와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막상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경찰의 주거진입권 인정 항목이 빠졌다.

문제가 불거지자 여성부 관계자는 "관련 항목의 제도화를 위해 관계부처와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여성부 관계자는 "(경찰의 주거진입권 인정 항목은) 지난달 본회의에선 반영하지 못했지만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본 항목을 포함시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경찰청과 이미 합의했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경찰청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관련 사항에 대해 협의 중인 건 사실이지만 여성부와 합의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정폭력사건 초기 대응을 위해 경찰의 주거진입권을 인정하는 게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자칫 주거 침입 등 공권력 남용이라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