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초 열리는 '초하루회'는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모임 중 하나로 꼽힌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박영주 이건산업 회장,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지송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 등 쟁쟁한 재계 인사들이 총망라돼 있는 이 모임의 공통 분모는 '학생군사교육단(ROTC) 1기'다.

이들이 ROTC에 몸을 던진 것이 1961년 6월1일,올해로 50년이 지났다. 1기 2642명을 비롯해 ROTC가 지금껏 배출한 초급 장교는 약 16만명.국방의 한 축을 담당했던 ROTC는 재계에서도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ROTC 중앙회가 파악한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급 인물만 250여명이다.

ROTC 출신 중엔 오너 일가가 즐비하다. LS그룹이 대표적이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3남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이 14기이고,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차남 구자용 E1 회장도 이듬해 15기로 ROTC에 들어갔다.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7기),장세주 동국제강 회장(14기) 등 철강업계 2세들도 초급 장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신도리코 역시 고(故) 우상기 창업주가 아들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16기)을 ROTC에 입대시켰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도덕적인 의무를 다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에 옮긴 셈이다.

맨땅에서 기업을 일궈낸 인물들도 ROTC 인맥의 주요 줄기를 이루고 있다. 1기인 이건산업 박 회장과 일진그룹 허 회장을 비롯해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도 ROTC 10기다. 젊은 'ROTCian' 중엔 라오스 최대 기업인 코라오그룹을 일군 오세영 회장(24기)이 있다.

ROTC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은 수많은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유통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만 해도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3기)과 구학서 신세계 회장(8기)이 모두 ROTC 출신이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ROTC 출신이 맹활약하고 있다. 삼성에선 7기인 이순동 전 삼성미소금융재단 이사장(현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이 최고참 선배다.

2006년부터 삼성생명을 이끌어 온 '삼성의 금융맨' 이수창 사장(9기)과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될 박근희 사장(14기)은 ROTC 선후배다.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과 'D램의 달인'으로 불리는 조수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사장은 17기 동기다.

현대차그룹의 건설계열사인 현대엠코는 삼성생명처럼 전 · 현직 사장이 ROTC 선후배 사이다. 정수현 사장(11기)이 올 4월 현대엠코 신임 사장에 취임했고,2005년부터 현대엠코를 이끌던 김창희 부회장(14기)은 그룹이 인수한 현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4월 고문에서 부회장직에 복귀한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부회장도 14기다. LG그룹에선 허영호 LG이노텍 사장이 13기다.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ROTC 전문 경영인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7년간 SK그룹에서 CEO로 일하고 있는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10기),만년 2위인 하이트를 1위로 도약시킨 윤종웅 진로 고문(11기),㈜대우 사장을 거쳐 파라다이스를 이끌고 있는 추호석 총괄사장(11기)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