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계동 염광아파트에 사는 오모씨(48)는 아파트 값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간다. 학원 밀집지역에서 자녀를 교육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사하려니 아파트 값이 너무 떨어져서다. 단지 내에서 가장 큰 평형인 전용 133㎡에 사는 그는 "133㎡는 거래가 없어 132㎡ 실거래가를 찾아봤는데 9층 기준으로 2008년 6억7000만원에서 작년 말 5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며 "강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데 비강남 지역은 상황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 · 북 최대 15% 벌어져

2~3년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권 4개구의 집값은 강보합세인 데 비해 비강남권에선 1억원 안팎 떨어진 곳이 속출하고 있다.

26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 중순보다 아파트 값이 오른 곳은 11개구,내린 곳은 14개구로 나타났다.

집값 상승 11개구 중 강동(10.5%) 서초(8.0%) 강남(5.6%) 송파(3.6%) 등이 많이 올랐다. 비강남에선 중구(2.6%) 광진 · 영등포(각 1.6%) 중랑(1.1%) 등이 오름세를 보였지만 상승률은 높지 않았다.

나머지 비강남 지역은 대부분 하락했다. 은평이 4.7% 떨어진 것을 비롯해 도봉(4.5%) 강북 · 노원(각 3.3%) 강서 · 금천(각 2.5%) 성북(2.2%) 등의 순이었다. 용산구도 0.5% 내렸다.

◆침체기에 먼저 하락한 비강남 집값

시장 침체기를 맞아 비강남권 집값의 하락골이 깊어지고 있다. 가양동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 사는 육모씨(37)는 "전용 85㎡ 4층이 2009년 7월 5억1500만원까지 거래됐으나 지난 1월 말 실거래가는 5층이 4억2500만원이었다"며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이 걸어서 5분 거리인데 집값이 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방학동 청구아파트 84㎡에 사는 최모씨는 "2008년 여름 강남의 같은 평형이 10억원을 넘을 때 4억원이었다"며 "한때 2억6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3억원 안팎의 시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에선 급등한 단지가 적지 않다.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5㎡는 2009년 1월 10억2500만원(10층)에서 지난달 말 13억원(9층)으로 뛰었다. 반포동 반포자이 85㎡도 2009년 2월 11억6000만원(10층)에서 지난달 초 14억500만원(10층)으로 올랐다. 2008년 12월 11억2500만원(14층)에 매매된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전용 117㎡는 지난달 말 14억4500만원(16층)에 팔렸다.

◆다시 거론되는 '저수지 이론'

전문가들은 수요가 많은 지역은 상승기에 가장 먼저 오르고 하락기엔 뒤늦게 반응한다는 '저수지 이론'으로 강남북 가격차별화를 설명하고 있다. 저수지 물은 가뭄(가격 하락) 때 가장자리(주변부)부터 줄어든다(가격 하락)는 것이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강남은 주택 구매력이 강한 수출 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아 집값이 오르지만 비강남에선 내수 경기에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이 많아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강남 중심의 부동산 정책도 한 요인이다. 곽창석 나비에셋 대표는 "강남에서 집값이 들썩이면 강북지역으로 건너오는 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며 "강남에서 훈풍이 불면 규제가 시작돼 강북지역은 집값 상승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