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자동차를 구입할 때 연비를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허머가 '기름 먹는 하마'로 인식되면서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반면 일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기름과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차)인 프리우스가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것도 모두 연비 때문이다.

한태식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파워트레인(PT)센터 성능실험실장(52 · 상무)이 개발한 지능형 차량제어 시스템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이 시스템은 차량에 장착된 제어기가 차량 운행 조건을 파악해 연비를 높이는 장치다. 한 상무는 "자체 실험 결과 이 시스템을 설치한 차량은 그렇지 않은 차량보다 연비가 10~15% 정도 개선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연비가 ℓ당 15㎞인 차량에 이 시스템을 장착하면 연비가 ℓ당 16.5~17.25㎞ 정도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연비가 10%만 높아져도 평일 출퇴근용,휴일 나들이 등으로 하루 50㎞씩 1년에 약 1만8000㎞를 주행하는 운전자라면 연간 120ℓ의 기름을 절감할 수 있다. 휘발유 가격이 ℓ당 1900원이라면 1년에 22만8000원의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시스템은 10여개의 개별 기술이 융합돼 있으며 이 중 핵심 기술은 '공회전시 자동엔진정지장치(오토ISG)'와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오토ISG는 자동변속기가 달린 오토매틱 차량이 주행 중 잠시 멈춰 섰을 때 엔진을 자동으로 끄고,차량이 다시 출발할 때 엔진을 자동으로 켜주는 장치다.

지금은 오토매틱 차량의 경우 주행 중 잠시 멈춰 있을 때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도 엔진이 계속 돌아간다. 이 같은 엔진 공회전 때문에 차량 연비가 떨어진다. 한 상무는 "출퇴근 시간대에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차량은 기름을 많이 소모한다"며 "오토ISG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내리막길 주행 등으로 운전자가 차량 속도를 낮출 때 엔진 대신 전기 배터리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연비를 낮추는 장치다. 작동 원리는 기본적으로 기존 하이브리드 차량과 같다. 그러나 전기 배터리를 충전할 때 사용되는 모터의 크기가 기존 하이브리드 차량에 들어가는 것보다 작아 부품 단가가 낮은 데다 설치가 간편하다는 게 장점이다. 한 상무는 "경쟁사 제품보다 30~35%가량 값이 싸다"고 말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이미 지능형 차량제어 시스템을 통해 연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오토ISG 기술은 일본과 유럽 업체들이 2009년 하반기부터 비슷한 제품을 양산하고 있고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은 GM이 2007년부터 유사한 기술을 선보였다. 아직까지는 상용화 초기 단계로 시장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국내에선 현대차가 2008년부터 기술 개발을 시작해 작년 8월 완료했고 최근 일부 승용차에 제품이 장착되고 있다.

한 상무는 "중 · 소형차 소비자는 차량을 선택할 때 연비에 관심이 많다"며 "기아차의 포르테,현대차의 아반떼 등 현대 · 기아차가 만드는 웬만한 중 · 소형차에는 앞으로 이 시스템 전체 또는 일부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련 시장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또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점과 연비 개선을 위한 제어 시스템 분야에서 우리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그리고 만약 이 기술이 없었다면 선진국 제품을 수입하면서 지불해야 할 로열티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번 기술 개발이 갖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으뜸기술상 심사위원들은 이 기술에 대해 "자동차 분야에서 제어 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기술에 토털 엔지니어링 개념을 적용해 융합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한 상무는 서울대와 KAIST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뒤 1984년 현대차 엔진 개발실에 입사해 자동차 엔진과 제어 분야를 연구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