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과 원전 폭발사고의 여파로 일본산 부품 · 소재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일부 해운사들이 방사성 물질 노출을 우려해 일본 요코하마항 등 피해지역 입항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일본-한국-중국 등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일본산 부품을 받아 쓰는 기업들은 재고량을 점검하며 수입 거래선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 11일 이후 이미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은 큰 폭으로 줄었다. 이달 들어 11일까지 하루 평균 수입액은 3억333만달러였으나 15일엔 1억9393만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산 전자 · 화학소재 조달 비상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전자와 화학소재 관련 기업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인쇄회로기판(PCB)에 칩을 연결하는 접착제류인 '비스말레이미드트리아진(BT) 수지' 공급 부족으로 전 세계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생산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BT 수지 공급의 절반 이상을 맡고 있는 일본 미쓰비시가스케미컬(MGC)이 지진과 쓰나미로 두 곳의 공장 가동을 중단해서다.

이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한 달 또는 한 달반 정도의 재고를 쌓아두고 있다고 가정할 때,미쓰비시가스케미컬의 조업 중단이 두 달 이상 지속된다면 전 세계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생산량의 40~50%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자칫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BT 수지의 일부 물량은 국내에서도 공급받을 수 있지만,사태가 장기화하면 생산과정에서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LCD(액정표시장치) BLU(백라이트 유닛) 등에 쓰이는 편광판과 광학필름도 수급 차질이 예상된다. 광학필름 편광판 도광판 등 핵심 부품의 원재료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LG화학 SKC 제일모직 도레이첨단소재 ㈜효성 등 국내 관련 기업들도 수급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LG화학 관계자는 "음극재 등을 일본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재고량이 한 달치 수준이라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입선 변경도 검토"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위아 등은 주요 부품인 베어링(회전하는 축을 받치는 기구) 재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 현지의 물류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베어링을 선적해 국내에 들여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서다. 국내 업체들은 공작기계 제조용 베어링 대부분을 일본 NSK NTN 등으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베어링 등 수입 부품의 경우 보통 두 달 이상치의 재고를 유지해왔지만 재고가 평소의 70%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며 "부품 조달 차질이 장기화하면 유럽 쪽으로 구매선을 돌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공작기계용 컨트롤러(제어기)는 일본 파낙으로부터 90% 이상 수입한다"며 "재고량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 선적 시기를 조금씩 앞당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노삼성자동차 한국GM 등 자동차 업체들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부품업체들의 조업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일본 부품 비중이 1% 정도로 낮아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철강사에서 연간 1100만t의 열연강판과 후판 등 철강재를 수입하는 현대하이스코 동부제철 등 국내 냉연업체와 조선사들도 수급 불균형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철강재는 국내 연간 철강재 소비량인 약 5000만t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장창민/안정락/조재희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