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처신할까. 훌륭한 군주와 올곧은 신하가 만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적당히 아부하면서 권세를 누리는 방식을 택하지만,스스로 삶의 원칙을 정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 유형 중 굴원이 그런 경우다. 《사기》의 '굴원가생열전'에 의하면 굴원의 이름은 평(平)이고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초회왕(楚懷王)과 경양왕(頃襄王)을 섬겼고 삼려대부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그 원동력에 대해 사마천은 굴원의 견문과 기억력,시대를 파악하는 능력과 글솜씨를 들었다. 그러나 역사와 외교적인 안목이 뛰어난 굴원에게는 적당한 타협이나 융화가 별로 없었다. 자신의 자질이나 능력,청렴함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려는 엘리티즘만 있을 뿐이었다.

잘 나가던 굴원 앞에 상관대부 근상이란 자가 정치적 라이벌로 등장했다. 이후 굴원은 갖은 시기와 이간질을 받게 된다. 그가 회왕으로부터 버림받을 당시 근상이 왕에게 "그는 법령이 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자기 공을 뽐내면서 '자기가 아니면 법령을 제대로 만들 사람이 없다'고 했다"며 일러바쳤는데,이는 굴원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사실 특별한 잘못도 없이 좌도(左徒 · 국왕 곁에 있는 관리로 조서나 명령을 내릴 때 초안을 잡고 외교 협상 등의 일을 함) 벼슬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쫓겨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평소 굴원의 행태에 대한 회왕의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있었고 이것이 근상을 매개로 해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굴원을 내친 회왕은 장의에게 속아 초나라 땅 600리를 빼앗기고 술수에 걸려들어 8만명의 병사를 진나라 군대에 잃었다. 화친을 맺자는 계략에 걸려들어 진나라로 들어갔다가 억류돼 적국에서 늙어 죽었다.

드넓은 초나라 지역의 강가를 유람하던 굴원의 얼굴빛은 꾀죄죄했고 몸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어떤 어부가 그를 보고 "당신은 삼려대부나 되는 분이거늘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습니까"라고 묻자 굴원은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습니다. (擧世混濁而我獨淸,衆人皆醉而我獨醒,是以見放)"라고 답했다.

그러자 어부는 굴원을 이렇게 몰아갔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

그렇다고 물러날 굴원도 아니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사람이라면 또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또 어찌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이렇게 말하고 그는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사마천은 굴원에 대해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내고,먼지 쌓인 속세 밖으로 헤쳐나와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하게 살다간 굴원에게 한없는 동병상련의 정감을 갖고 그의 문학엔 '원(怨)'과 '분(憤)'이 삭혀진 한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자신이 겪었고 굴원도 겪어야 했던 원망과 울분의 정서는 시속(時俗)에 쉽게 물들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의 한계가 거기에 있으니 어찌하랴.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