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서 수출 업무를 담당하던 김모씨(56).작년 6월 만 55세 정년을 맞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김씨는 지금 최악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퇴직금 1억5000만원과 은행 대출금 5000만원으로 경기도 일산에서 고깃집을 차렸으나 수입이 당초 예상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게를 매물로 내놓고 다른 일을 찾고 있다"며 "퇴직한 친구들과 함께 유명 프랜차이즈 쪽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년퇴직한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이 준비없이 창업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베이비 부머는 6 · 25전쟁 직후 출산율이 크게 높아진 시기에 태어난 1955~1963년생들을 말한다. 이들 가운데 1955년생이 작년에 처음 정년(만 55세 기준)을 맞았으며,상당수가 '생계형 창업'에 뛰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한국경제신문과 나이스신용평가 조사에 따르면 작년 서울 및 6대 광역시에서 출범한 신설법인은 3만3715개로 2009년보다 7%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 창업자 비중이 29%로 40대(35%)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50대 창업자 비중은 5년 새 7%포인트 급증했으며,이는 베이비 부머의 정년 도래 등 산업 주력 부대의 퇴직 물결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은퇴자들이 창업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보기술(IT) · 벤처 · 제조업 등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직종보다는 골목상권의 소규모 서비스 · 유통업에만 몰리는 경향이 뚜렷했다.

2006년 전체 창업 중 54%를 차지한 서비스 · 유통업 비중은 지난해 64%로 크게 높아졌다. 자본금 규모로 보면 2008년까지 5000만원 미만 기업 비중은 60%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에는 73%로 크게 늘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개인 창업자의 경우도 24%가 소규모 서비스업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당한 고급 인력들이 음식점 등을 개업했다가 1~2년 새 수억원을 까먹고 빈민층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다"며 "소상공인 창업을 장려하기보다는 기존 사업자를 성장시켜 창업 예정자를 임금고용자로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