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5급으로 A공기업에 2010년 채용된 이모씨(26)의 연봉은 2900만원이다. 한 해 먼저 입사한 윗 기수 선배들에 비해 25%(1000만원)가량 적다. 2년간 임금이 동결된 탓에 초임 때 연봉 그대로다.

이씨가 선배들과 같은 임금을 받으려면 20년은 더 근무해 '호봉을 적용받지 않는' 간부(2급)가 돼야 한다. 그때까지는 적은 연봉을 받아야 하고,국민연금과 퇴직금도 적게 받아야 한다. 수입이 적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에도 차별을 받는다.

이씨는 "같은 공간에서,같은 일을 하는데 왜 선배들보다 임금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1년 새 입사 동기 중 5명이 민간기업으로 가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며 "다른 기수에 비해 이직률이 5배는 된다"고 전했다. "다른 친구들도 틈틈이 자격증 공부를 하며 이직 기회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2년 만에 부작용 속출

기획재정부는 116개 공공기관의 대졸 신입사원 임금을 평균 16% 깎겠다고 2009년 2월 발표했다. 공기업 24곳,준정부기관 80곳,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기타 공공기관 12곳이 대상이었다. 고임금을 받는 은행들도 '자발적 동참'을 요구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월 말 "일자리 나누기에 공기업과 금융기업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임금을 깎는 대신 고용을 늘리라고 지시한 뒤 약 20일 만에 나온 정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당시에는 큰 반발이 없었다. 취직하는 것이 급했던 신입사원들은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당시엔 합격시켜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금융공기업 입사자 박모씨 · 31)는 것이다. 연봉이 깎이지 않는 기존 직원들로 구성된 각 기관 노조들이 반대했지만 자신들의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탓인지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삭감된 급여를 받게 된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다니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규직으로 뽑혔고 하는 일이 같은데도 급여는 적은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급여 수준도 괜찮은 민간기업들에 비해 적어 이탈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급여가 낮아 좋은 인재를 뽑지 못하고,뽑아놓은 인재도 민간에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 노조,"법적 소송"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금융감독원 신입사원들은 노조에 임금 차별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공정사회를 화두로 삼는 정부에서 말못하는 신입사원들의 임금만 일방적으로 깎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었다. 높은 공기업 임금을 깎아야 한다면 전체 구성원이 똑같이 부담해야지,신입사원들만 임금을 삭감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른 공기업들에서도 마찬가지 불만이 쏟아졌다. 한 공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0)는 "박탈감이 엄청나다"며 "입사할 때는 설마하니 이대로 계속하진 않겠지 생각했는데 10년,20년 계속 이런 차이를 감내하고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햇병아리라고 그냥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 아니냐"며 "나몰라라 하는 선배들에 대한 분노도 크다"고 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 예탁결제원 등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소속 13개 기관 노조들은 한꺼번에 법적 소송에 들어가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피해를 받은 당사자인 신입사원이 소를 제기하는 주체가 돼야 하는 문제 때문에 그간 대응이 어려웠지만,이들이 2~3년차가 된 지금은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한은 노조 관계자는 "노사 교섭으로 원상 회복해 보려고 했지만 정부 지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별 기관 교섭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른 금융공기업 노조 관계자도 "지금 대상자가 소수일 때 빨리 문제를 털어버려야지,나중에는 더 해결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개별 기관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한꺼번에 소송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관들 "임금 체계 일원화해야"

불만이 큰 것은 임금을 받는 신입사원들만이 아니다. 임금을 주는 공공기관 경영자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임금 격차가 커지면 조직 안정성을 해치는데 재정부가 임금 체계를 일원화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다"며 "우리도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기관들은 임금을 인상할 때 신입사원 임금을 조금 더 올려주거나 복리후생비를 더 얹어주는 식으로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이상은/김재후/서기열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