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신지은씨(32)는 며칠 전 국내 A포털 업체에서 제작한 스마트폰용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려다 짜증이 났다. 프로그램을 처음 실행하자마자 주민등록번호 등 각종 신상정보를 적어 아이디를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트위터를 이용할 때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설정해 곧바로 쓸 수 있었는데 국내 사이트들은 온갖 개인정보를 요구하니 사용하기가 싫어진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트위터,페이스북 등 해외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사이트에만 적용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본인 확인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본인 확인제는 악성 댓글 등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하루 방문자 10만명을 넘는 인터넷 게시판(서비스)의 경우 주민등록번호 등을 이용,사용자 확인을 의무화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국내 업체만 지키는 인터넷 실명제

문제는 해외 업체와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서버 등을 해외에 두고 운영하는 외국 사이트들은 국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본인 확인제를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국내 가입자가 각각 100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본인 확인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정지훈 미래칼럼니스트는 "한국 사이트는 처음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집어넣으라고 하니 잘 안 쓰게 된다"며 "국내 회사를 차별하는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엔 일부 언론사를 중심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우회하는 댓글 서비스까지 나왔다. 정보기술(IT) 전문 미디어인 블로터닷넷은 지난 4월 '본인 확인제' 대상 사이트로 분류되자 '소셜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사 하단에 직접 댓글을 달지 않고 트위터 등 SNS 계정을 통해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게시판 서비스다. 블로터닷넷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꼭 실명을 확인한 뒤에만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새로운 방식의 댓글 서비스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유튜브 동영상 올리기는 아이폰만(?)

구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는 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유튜브 모회사인 구글은 지난해 4월 유튜브가 인터넷 실명제 대상 사이트에 포함되자 국내 계정으로 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을 차단했다. 구글은 한국에서 지사를 운영하고 있어 현행 법을 존중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 사용자들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릴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이 지난해 말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 차례 시끄러운 논란이 벌어졌다. 아이폰에는 사용자들이 유튜브에 곧바로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코리아가 유튜브 운영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를 국내 법을 적용받지 않는 사이트로 간주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국내 1위(페이지뷰 기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가 인터넷 실명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내 한 포털업체 관계자는 "유튜브 건은 역차별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며 "해외 업체도 규제를 하거나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정락/조귀동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