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도량형의 단위는 인체,특히 권력자의 몸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이집트에선 파라오의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거리에 손바닥 폭을 더한 '로열 이집트 큐빗'이란 단위를 기준으로 자를 만들었다. 피라미드 공사에도 이 단위가 쓰였다고 한다. 야드는 12세기 중후반 재위한 영국의 헨리1세가 정했다. 똑바로 서서 팔을 쭉 뻗은 다음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이렇게 선포했다. "지금부터 내 코끝에서 엄지손가락까지의 거리를 1야드로 한다. " 피트는 발 길이,인치는 엄지손가락 첫 마디가 기준이 됐다.

미터법 아이디어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나왔다. 무려 25만여개의 단위가 쓰일 정도로 도량형 체계가 엉망이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m로 하자'고 제안했다. 또 각 모서리의 길이가 10분의 1m인 정육면체와 부피가 같은 섭씨 4도인 물의 무게를 1㎏,그 부피를 1ℓ로 정했다.

미터법이 정확하고 합리적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었으나 실생활에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1875년 '미터 협약' 체결로 국제표준이 됐지만 지금도 전통적 도량형과 혼용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미국 영국만 해도 인치 마일 야드 등을 함께 쓰고 있다. 국내에 미터법이 들어온 때는 1902년이다. 대한제국의 1호 법률이 바로 도량형법이었다. 한동안 일제가 도입한 관 근 동 등의 척관법과 병용되다가 1961년부터 법정계량 단위로 통일됐다. 1983년엔 미터법 표기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생활속 정착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사용실태를 조사해 보니 신문과 방송기사의 경우 각각 74%,97%가 평 대신 ㎡를 쓰고 있으나 기업 광고에선 사용률이 54%에 그쳤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계약서상엔 ㎡로 기록하면서도 홍보물 등에서는 여전히 평을 쓰고 금은방에선 돈,한약재상에선 냥 · 근 · 관을 주로 사용한단다.

문제는 3.3㎡(1평),3.75g(1돈) 같은 변칙 사용의 관행화다. 대부분 1㎡,1g으로 얘기하면 '감'이 안잡힌다고 해서 나온 고육책이다. 더 굳어지기 전에 무슨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공주택 공급면적을 80㎡,100㎡ 등으로 바꾸고 가격도 ㎡ 당 얼마로 공고해 보면 어떨까. 무작정 밀어붙이기보다는 편리성을 부각시켜 사용을 유도하는 게 순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