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은퇴하면 인생을 즐기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막상 집에만 있으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2008년 2월 명예퇴직으로 교사생활을 끝낸 김향순씨(62)는 “처음엔 여행을 하며 은퇴생활을 즐겼지만 그것도 한 때”라며 “어딘가 소속돼 일하던 생활이 그립다”고 말했다.이에 김씨는 최근 매일 아침 9시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서울 서초구)에 개설된 다문화교사과정에 참석한다.



다문화교사과정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50세 이상 준고령자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고령자 뉴스타트 프로그램 중 교직출신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 과정이다.2007년 노동부가 시작한 고령자 뉴스타트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맡아 ‘교육-현장연수-취업알선’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700명을 대상으로 10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올해 예산이 46억여원으로 대폭 늘어났다.현재 100개 과정에 3000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그중 다문화교사과정,여신상담 및 사후관리 과정은 해당분야 경력을 갖춘 준고령자를 대상을 하는 전문가 과정으로 올해 처음 개설했다.



다문화교사과정 연수생 30여명은 교직 출신으로 대부분 매달 200만~300만원 이상의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다.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즐기면 되지 않느냐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연금으로 경제생활은 가능하지만 사회적 존재가치 상실로 인한 무기력증을 견디기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교장직급정년으로 2008년 8월 퇴직한 양희석씨(62)도 자녀가 모두 출가해 부인과 함께 생활하기에 충분한 연금을 받고 있지만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기 위해 이 과정에 참여했다.양씨는 “생계유지가 아닌,경력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 재취업에 도전한다”며 “수입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무료봉사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한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한 김세권씨(54)는 “퇴직 후 처음 며칠은 좋았지만 곧 은퇴자의 현실에 눈을 떴다”며 “밖에서 사람들 만나는 데 자신이 없어지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돼 심신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지난 17일 또 다른 고령자 뉴스타트 전문가 과정인 ‘여신상담 및 사후관리’과정 첫 수업에 참석했다.이 과정에는 금융종사 경력을 갖고 있는 준고령자들 40여명이 모여 강의를 들었다.김씨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여창수씨(57)도 2006년 신한은행에서 퇴직해 지난해까지 계약직으로 일했지만 나이 때문에 올해는 계약을 하지 못했다.억대 연봉자였던 여씨가 연봉 2500만원도 안 되는 계약직 생활을 했던 건 돈보다는 사회활동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여씨는 “여신관련 업무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사회에 다시 나가고 싶다”며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문성을 살려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도, 어딘가에 소속돼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없다고 하소연했다.한국산업인력공단의 조영일 직업능력지원국장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시작되면서 고령 은퇴자에 대한 사회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생계형 재취업을 위한 정책도 중요하지만,은퇴자들을 사회적 자본으로 인식하고 인재활용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