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앞치마 제조업체 A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국내 특허를 등록하고 작년 5월 출시한 자사의 일회용 앞치마와 거의 똑같은 제품이 일본계 B사의 국내 천원숍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근은 2005년 도쿄 소비재 박람회였다. 이때 A사의 일회용 앞치마를 접한 B사는 A사가 일본 특허를 내지 않은 것을 틈타 모방제품을 출시,대박을 터뜨린 뒤 한국시장 역공에 나섰던 것.


◆무턱대고 팔다가는 기술만 뺏겨

경기침체로 해외 특허 출원에 소홀,상품을 수출하려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뺏기는 중소기업들의 억울한 사례가 늘고 있다.

30일 서울시 산하 지식재산센터에 따르면 국내 수출기업 3곳 중 1곳은 해외 진출 전 자사의 기술 보호를 위한 예방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전선에서 겪는 특허침해 피해는 디자인 부문에서 두드러진다. 서울지식재산센터의 박진기 변리사는 "중국 전시회에 참가해 '굿 디자인상'을 받아도 중국 특허가 없으면 아이디어만 도용당하고 정작 수익은 못 내는 경우가 많다"며 "일본 등 선진국에선 특허 없이는 절대로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식재산권 정보 및 전담인력 부족으로 사기를 당하거나 특허 침해 소송에 휘말리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지재권 전담인력을 둔 곳이 9.6%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 탓이다.

중기를 겨냥한 지재권 분쟁은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다. 한국이 기술강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대기업뿐만 아니라 매출 1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도 미국의 인텔렉추얼벤처스(IV) 등 이른바 '특허괴물(patent troll)'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제각각인 특허 제도도 문제다. 특허 관련 제소를 가장 많이 하는 미국에선 한국(선출원주의)과 달리 선(先)발명주의를 택하고 있어 국내 기업이 먼저 특허를 등록했어도 미국 개발자의 발명노트가 그 전에 씌어졌다면 특허 침해가 성립된다.


◆'아이디어=돈' 발명자본주의 정착 시급

하지만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엔 국가별로 400만~500만원 이상 드는 해외 특허 출원비용이 부담이 된다. 어느 나라를 선택해 특허를 출원할지도 고민이다.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도 해외 수출을 포기하는 업체가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퀄컴' 같은 기업이 탄생하려면 중기 스스로 '특허경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한다. 무작정 상품만 많이 팔려 하기보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받을 수 있는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재권이 주식 채권처럼 환금성 있는 재산으로 거래되는 '발명 자본주의(invention capitalism)' 정착도 중요하다. 류연수 서울지식재산센터 팀장은 "미국은 특허를 사고팔고,특허 컨설팅과 소송을 대리하는 지재권 관리회사가 220여개에 달하고 시장규모는 한국의 20배인 100조원에 달한다"며 "영세한 중기들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값에 보상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