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국내 최대 컨테이너 부두인 부산시 감만동 신선대부두.부두 한쪽에 있는 컨테이너 임대사업장에서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중고 컨테이너를 고치는 쇳소리였다. 컨테이너 임대업체인 삼성벤픽스의 김지익 업무부장은 "인부들이 컨테이너를 수리하고 있는 중"이라며 "지난 1주일 사이 50여개를 고쳤는데 이미 팔렸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이 달리면서 외국에서 컨테이너를 들여와 빌려주는 임대업체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고 귀띔했다.



◆'금값'으로 바뀐 컨테이너 시세

컨테이너 품귀 현상은 신선대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야적장에 쌓여 있던 2만7000여개의 빈 컨테이너가 최근 1만5000여개로 대폭 줄었다. 이정선 대한통운터미널 운영계획팀장은 "남은 물량도 대형 선사들이 장기계약용으로 확보해둔 것이어서 중소 수출업체들이 임대해 쓸 컨테이너를 찾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인천항쪽도 마찬가지였다. 부산항보다 물동량이 적긴 하지만 컨테이너 품귀로 경인부곡컨테이너 야적장이 텅 비었다. 부두 관계자는 "중소 수출업체 사장과 수출 담당자들이 컨테이너를 구할 수 없냐고 물어오지만 속시원한 답을 못해준다"고 전했다.

남대문에서 액세서리를 만들어 수출하는 이명식 대표(43)는 "세계 경제가 나빠 컨테이너가 남아돌 줄 알았는데 빈 컨테이너가 없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며 "유럽 업체와 맺은 수출계약을 못 지킬까봐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컨테이너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격 상승 추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컨테이너 매매 및 정비관리 업체인 ㈜한실에 따르면 요즘 새 컨테이너 가격은 2100달러로 작년 이맘 때보다 300달러나 올랐다. 제작한 지 13년 된 중고 컨테이너는 작년 800~900달러에 살 수 있었으나 요즘엔 1300달러를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컨테이너(20피트)를 하루 빌리는 가격도 작년엔 0.6달러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서는 1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박정배 한실 영업상무는 "현재 남아 있는 컨테이너는 단기(3년)나 장기(7~8년)로 잡혀 있는 것들"이라며 "지금 당장 선수금을 주거나 웃돈을 준다고 해도 물량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선박 확보도 '비상'

설상가상으로 화물을 실어나를 선박마저 공급이 부족한 상태다. 유럽이나 미주노선을 운항하는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대형 선사의 배는 대기업 몫으로 예약돼 있어 중소업체들은 신용이 취약한 신생 해운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삼성 LG 등 대형 화주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다"며 "외국 선사들은 운임료 조건이 좋은 중국 물량에 관심이 있고 한국 화주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배들이 작년 대비 절반밖에 부산에 안 들른다"며 "선복 스페이스(물건을 실을 배의 공간)가 '제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화물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보내는 데 드는 운임료는 작년 2분기 1000달러에서 지난 19일 현재 2000달러로 올랐다.

해상물류 대란의 원인은 수요공급의 불균형 탓이다. 금융위기 이후 해운사들이 노선 구조조정에 나서 유럽과 미주노선에 투입하던 선박 수를 크게 줄인 반면,작년 말을 기점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증가세로 돌아서자 이를 소화할 선박과 컨테이너가 부족해지는 '미스매칭'이 발생한 것.선박 수가 줄어들면 컨테이너 이동도 줄어 적어도 1개월 이상 시간차가 발생한다.

임종관 KMI(해양수산개발원) 물류항만연구본부장에 따르면 싱가포르 등 해운물류 기지에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엔진만 켜놓은 선박들이 대거 정박해 있다. 세계 물동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비용 부담이 커 항해를 꺼리고 있는 것.

◆컨테이너 생산업체들 "경기 아직 불안"

컨테이너 품귀 현상은 중국 등 컨테이너 생산업체들이 지난 1년여간 생산을 중단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전 세계 컨테이너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제조공장들은 세계 물동량이 줄고 컨테이너 반납이 늘자 생산을 대폭 축소했다. 연간 5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였던 중국 쪽 생산량이 작년엔 30만TEU로 줄었다.

원양선사들이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속도를 낮춰 운송하는 '경제속도 운항'도 컨테이너 회수 기간을 길어지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컨테이너 부족 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임종관 본부장은 "올해부터 1만TEU급 선박들이 순차적으로 국내에 인도되면 해운회사들이 정상 영업을 위해 컨테이너 확보에 나설 게 뻔해 더욱 심각한 '컨테이너 부족 대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해운 대란에 대해 수출업체 일각에서는 수요 측면보다 해운사의 고의적 방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대기업 수출담당자는 "북미로 가는 운임료의 경우 매년 5월에 1년치를 정한다"며 "해운사들이 이를 앞두고 인위적으로 값을 조정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운업계 관계자는 "작년 최저점보다 운임이 3~4배 뛴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많이 떨어진 뒤에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김동민/부산=김태현/박민제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