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2'를 보면 과학자들은 인류의 최후에서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할 인간군으로 분류된다. 스마트한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나사,그들만의 방식》(찰스 펠러린 지음,김홍식 옮김,비즈니스맵)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와 엔지니어 집단인 나사의 조직관리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 최고 브레인들의 '창의력'에 관한 게 아니라 '조직관리'에 관한 얘기라고? 가장 개인적인 직업 중 하나가 과학자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나사(NASA)에서 조직관리를 배우라는 이 책의 주제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나사의 책임자로 있다가 허블우주망원경의 반사경 결함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저자의 고백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온 세상의 카메라가 지켜 보는 앞에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기 전까지 저자의 경력은 완벽했다. 천체물리학 박사,미 항공우주국 천체물리학본부장으로 10년간 근무,NASA 최고의 상인 공로훈장과 지도자상 수상.기술적인 부분에서 최고로 인정받던 그를 NASA에서 밀어낸 명분은 '리더십 결함'이었다.

세계 최고의 두뇌를 자부하는 수천명의 인재들이 15년에 걸쳐 17억달러를 들여 우주에 쏘아 올린 허블망원경은 어쩌다 결함이 있는 반사경을 달게 되었던 것일까. 원인은 하청업체가 만든 반사경의 표면이 깔끔하지 못한 데 있었다.

NASA의 결함점검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리더십 실패'가 망원경의 반사경 결함을 초래했다고 보고했다.

허블우주망원경 사례는 최근 하청업체가 만든 부품 결함으로 사상 최대의 리콜사태를 맞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를 연상시키기도 하고,선명하지 않은 기장과 부기장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에 1980~90년대 연달아 충돌사고를 일으켰던 대한항공을 떠올리게도 한다. 문제가 발생하는 데는 직접적인 원인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짜 원인이 있는 법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했고 포괄적인 주변 상황을 관리하는 데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의 업무는 단순히 기계적인 과정으로만 대했고,자신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이들을 압박했다. 이에 대응해 하청업체들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숨기는 방식으로 압력을 회피했다. 바로 이 연결지점에서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국가적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과학자답게 저자는 인간관계를 인간역학으로 치환한 후 문제 해결에 나선다. NASA에서 물러나 콜로라도 경영대학으로 옮긴 그는 허블망원경 사태에서 드러난 조직관리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미친듯이 경영학 서적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성공한 개인의 특징이 부각된 사례들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논리체계를 얻기는 어려웠다.

고민하던 저자는 자신의 물리학적 상식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 "좌표체계를 제대로 찾기만 하면 불가능한 문제도 2개의 확고부동한 실체로 변환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이 책의 핵심인 '4차원 시스템과 8가지 행동'이다. 사람과 조직문화는 X축과 Y축으로 나뉜 좌표체계 속에서 크게 4가지 범주로 구분되고 그 어느 지점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개인의 기질이자 문화의 기질이다. 조직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기능과 역할에 따라 이 4가지 차원의 사람과 문화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능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4가지 영역에서 강약은 있을 수 있으나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4차원 시스템은 모두가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양성(Cultivating),사람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함(Including),있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상상(Visioning),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감독(Directing)이다.

이는 다시 8가지 행동으로 유형화될 수 있다. 진심어린 존중을 표현하라,공통관심사를 말하라,적절하게 사람들을 포함시켜라,모든 약속을 이행하라,현실에 근거한 낙관주의를 표출하라,100% 헌신하라,비난과 불평을 삼가라,역할 및 책임을 분명히 하라.

스마트한 인력들로 소통하는 조직을 구축해야 하는 조직의 리더들이라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NASA라는 과학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개인의 기질이라는 동양적인 접근방식이 다소 어색해 보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CEO에게 특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재호 미래에셋증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