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

한 · 중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사안이다. 정치적으로도 핵폭탄급 파괴력을 갖고 있는 이슈다. 값싼 중국의 농산물이 홍수처럼 밀려들 경우 한국 농업은 궤멸상태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야당과 농민단체의 반발,사회적 혼란도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의 FTA 협상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농수산물 중에서도 신선제품이 문제다. 양상추 배추 파 등의 채소는 수도권 근교에서 서울로 공급되는데,중국 산둥지역에서도 반나절이면 서울로 수송이 가능하다. 수송 시간이 길고 비용도 많이 드는 미국 농수산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교우위가 떨어지는 농업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게 최대 걸림돌"이라며 "지금도 중국산 농산물이 판을 치는데 한 · 중 FTA가 체결되면 그 결과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한국을 공식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양국 간 FTA가 체결되면 2013년까지 한 · 중 무역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FTA의 적극적인 추진을 촉구했다. 우리 정부는 경제협력 확대라는 원론적 수준만 되풀이한 채 확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계와 학계에선 한 · 중 FTA 체결이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중관계발전 공동연구 전문가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진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리스크를 피하면 얻는 것도 없다"며 "이번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 중 FTA 협상을 위한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현재 한 · 중 FTA 협상을 위한 양국 간 산 · 관 · 학 공동연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향후 중국의 가공무역 급감,중국 내수시장 성장,중국과 동아시아의 협력 확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한 · 중 FTA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들도 한 · 중 FTA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한 · 중 FTA 공동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415개) 중 71.3%가 FTA 체결에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8.7%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FTA 체결을 찬성하는 이유는 수출환경 개선을 통한 대중 수출 증가(50%)가 가장 많았고,중국시장 점유율 확대에 따른 경쟁력 상승(38.2%),외국 및 중국기업들의 국내 직접투자 확대(6.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 · 중 FTA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관건은 어떤 방향이든 맹목적인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농업부문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밀어붙여서도 안 되지만,산업구조 고도화와 동아시아 경제블록 시대를 앞두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 진입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FTA 체결은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겐 기회를 넓혀줄 게 분명하다"며 "정부는 향후 중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면서 취약산업 경쟁력 확충방안을 마련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채워야 할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주중 미 대사로 존 헌츠먼 유타주 주지사를 발탁해 미국 정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헌츠먼 지사가 야당인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향후 정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주중 대사로 임명한 이유는 단순했다. 헌츠먼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인 소녀를 수양딸로 입양하는 등 중국인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중국과의 관계에 놓여 있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 대사직이 중요하다"며 "중국과 새 파트너 시대를 열기 위해 헌츠먼 지사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드넓은 영토를 갖고 있는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지역마다 언어(방언)와 풍속,문화도 다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토종 중국인도 다른 지역 중국인을 확실하게 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외국인이 중국의 이런 문화적 특성을 단기간에 이해하고 소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이 중국과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면 중국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그룹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 다소 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공무원과 기업체 임직원들은 중국으로 해외연수 떠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곳곳에 미국통(通)은 많지만 중국통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내 '한국통'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은 5만명에 육박한다. 미국에 유학을 떠난 한국 학생들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법인이나 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중국인이 무려 70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한류(韓流)' 여파로 한국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 경제현안에도 밝은 편이다.

정재식 경북대 교수는 "중국인들이 경제 파트너인 한국을 착실하게 알아가고 있듯이,우리도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야 한다"며 "중국어만 배우게 할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습성과 심리체계,문화와 예술 등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중국 유학생들을 전략적으로 관리해 친한파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건국대는 지난 학기 '애니메이션' 전공 수업을 들었던 20명의 학생 중에 절반 이상이 중국 유학생들로 채워졌다. 신지호 건국대 문화예술대 교수는 "급속도로 팽창하는 중국 영상산업 인력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가면 중국에서 교수직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향후 한국과 중국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가교역할을 할 수 있어 결코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인터넷에 혐한(嫌韓) 분위기가 생겨나고,중국산 불량식품 수입 등에 따른 한국 네티즌들의 비난이 고조되는 등 두 나라 국민 감정도 예전에 비해 악화하고 있다. 양국 간 소통 채널로서 이들 유학생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