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
태평양 중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인구 11만명 남짓한 이 나라는 외국의 원양선단이 먹여살린다. 자국 영해 조업권을 외국 원양선단에 팔아 근근이 먹고 사는 가난한 나라다.

한국의 원양선단도 이 나라의 주요 고객이다.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의 고객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선원들은 주로 술집,모텔 등에 머물며 현지 10대 소녀들을 상대로 성매수를 일삼았다.

얼마나 정도가 심했는지 성매매 소녀들에게 '꼬레 꼬레아'(한국인에게 몸을 파는 소녀)란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키리바시 정부는 2003년 한국 원양어선의 입항을 일시 금지시켰다. 이듬해인 2004년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회의에서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됐다.

◆'글로벌' 성매매의 나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라디오 방송은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한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도했다. 남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전역의 마사지업소는 물론 주택가에서 버젓이 성매매를 벌이는 한인 여성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매춘'하면 한인이 떠오를 정도라는 말도 곁들였다.

방송에선 짝퉁 상품을 만들어 팔다 경찰의 단속에 걸린 LA 다운타운 내 일부 한인 업주들의 행태도 소개됐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미국에 위조상품을 제조 · 유통시키는 주요 국가"라는 현지 경찰의 인터뷰는 한국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국가의 품격은 개개인이 보이는 단편적 행위의 집합이기도 하다. '예의바른 일본인''친근한 필리핀인''항상 웃는 얼굴의 태국인''철두철미한 독일인' 등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오랜 평가가 축약된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기적과도 같은 경제발전,IT강국이란 이미지 덕분에 '열정적이고 스피디하다''근면하고 성실하다'는 것이다.

◆'몰(沒)매너'의 한국인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다. 소위 '어글리 코리안'이란 평가가 그것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물질 만능주의적인 사고와 낮은 준법의식,해외 성매매 등은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키리바시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공항에선 골프백을 맨 한국인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국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이곳까지 와서 골프를 치나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엔 18홀짜리 골프장이 하나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뭘 하러 왔을까.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 관계자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즈베키스탄을 찾는 상당수는 이른바 섹스관광이 목적"이라고 꼬집었다. 베트남,태국 등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어김없이 보이는 게 원정 성매매에 나선 한국인들이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의 부족도 '어글리 코리안'을 만든다.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는 '테이블 매너'가 대표적이다. 입안에 음식을 가득 채운 채 말하는 행동,심하게 소리내서 먹는 습관,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는 것 등은 아직도 한국인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다.

PR전문회사인 ㈜CPR의 차윤 대표(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는 "KOTRA 조사에 따르면 해외 비즈니스 실패 사례의 40%가량이 잘못된 매너 때문이란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넘쳐나는 거리

해외에서 법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도 추한 한국의 이미지를 빚어낸다. 호주의 한 TV방송사는 최근 취업을 위해 불법 입국하려던 한 한국 여성을 다룬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20대 초반의 이 여성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일자리를 구하려 했으나 시드니 공항에서 걸렸다.

현지 숙박시설 예약도 없고 500호주달러(약 52만원)의 현금만 있는 점을 수상히 여긴 공항보안국 관계자가 조사를 하려하자 이 여성은 해당 직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결국 이 여성은 한국으로 강제 송환당했다.

국내에서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주택가 골목.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이곳에는 항상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 내다버린 것이다. '쓰레기 투기 금지구역'이란 안내 문구를 써붙인 표지판 지지대가 쓰레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예 휘어져 버렸다. 이곳은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좋은데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강남의 한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캐나다 국적의 A씨(28)는 "집 앞에 버려야 할 쓰레기를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내놓는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쓰레기 무단투기뿐만이 아니다. 음주소란,불공정거래,사이버 불법복제,불법 파업 등 법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은 부지기수다.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의 법질서 준수 수준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대니얼 카우프먼 선임연구원은 "법치를 얼마나 잘 확립하느냐가 글로벌 경쟁력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채워야 할 것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5세기에 걸친 열강의 지배,20세기 초 독립,그러나 다시 이어진 전쟁….마치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보는 듯한 이 스토리는 핀란드의 근 · 현대사다. 인구 500여만명,국토의 70%에 달하는 산지와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척박한 환경.이런 핸디캡을 안고 있던 핀란드는 1990년까지만 해도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핀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조사에서 1위에 오른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를 넘는다.

◆기업 경쟁력과 연계

국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변의 성질을 갖는 것도 아니다. 국격을 이루는 요소는 많다. 기업도 그 중 하나다.

핀란드가 국가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키아의 성장이었다. 핀란드는 옛 소련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 '미래상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목재 · 펄프 회사였던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을 국가 대표브랜드로 육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휴대폰은 '작지만 우수함'을 표방하는 핀란드의 국가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노키아의 성공은 핀란드에'하이테크'란 이미지를 선사했다. 지금도 핀란드의 닉네임은 '노키아 랜드'다.

일본의 국가이미지는 '섬세함'과 '정확성'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국가브랜드지수 조사에서도 일본은 '경제 · 기업''과학 · 기술'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이미지를 만든 것도 기업들이었다. '경박단소'(輕薄短小)라는 경영전략은 30년간 일본의 국가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다. 198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It's a SONY'라는 광고 카피는 '이것이 일본이다'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하자

이 같은 측면에서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기업 이미지가 국가 브랜드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TV와 휴대폰을 만드는 삼성과 LG는 해외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하지만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독일 미국 제품에 비해 한국 기업의 제품은 세계 주요시장에서 30% 이상 저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굳이 해외에 한국 기업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따라서 당장 시급한 것은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기업의 역량에 걸맞은 정도로 끌어올리는 것,나아가 고양된 국격을 나라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해외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알리는 공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인도 출신 보노짓 후세인씨.그는 지난해 7월10일 버스를 탔다가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지인과 얘기를 나누던 30대의 취객이 시끄럽다고 시비를 걸었던 것.취객은 "아랍인은 더럽다" "냄새가 난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퍼부었다. 참다못한 후세인씨는 검찰에 고소했고,법원은 취객에게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국내에 거주하거나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약 110만명.2008년까지 16만7000여명이 국제결혼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고,이들이 낳은 2세는 10만3000여명에 달한다. 한국은 이제 전형적인 다(多)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외국인에게 폐쇄적이고 비우호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힘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고,길거리에서 만난 관광객들을 귀찮다는 듯이 외면하는 양상이 지속되는 한 코리아 브랜드는 결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없다.

물론 한국이 가진 장점도 많다. 세계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700여만명의 교포는 큰 자산이다. 그대로 놔두면 모래알에 불과하지만 일체감을 불어넣으면 국가를 알리는 뛰어난 네트워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전 세계 188개국 7000여만명이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도 훌륭한 홍보수단이다.

한반도 전체 인구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처음 접한다. 하지만 태권도 브랜드를 상품화하는 것은 여전히 미흡하다. 미국 영화사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통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중국의 쿵푸와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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