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부터 2009년 2월 사이 전국에서 설립된 재개발 · 재건축추진위원회 가운데 약 80%가 '설립 취소 또는 무효' 처분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최근 '정비구역 지정 전에 설립된 추진위는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면서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절차상 하자'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면 추진위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 200개 이상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600개 이상의 추진위가 이번 판결의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고,줄소송이 이어질 경우 재건축 · 재개발 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10월29일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광명마을 주택재개발구역 주민 10명이 "정비구역 지정 전 만들어진 추진위는 무효"라며 원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주민 동의(과반수)가 필요한 추진위를 구성하려면 토지 등 소유자의 범위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비구역 지정 · 고시가 선행돼야 함이 명백하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부 주민이 임의로 획정한 구역을 기준으로 추진위가 만들어진다면 정비사업에 관한 제반 법률관계가 불명확 · 불분명해져 정비사업의 추진이 전반적으로 혼란에 빠지고,구역 안에 토지 등을 소유한 사람의 법적 지위가 부당한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구역 지정 전에 설립된 추진위는 무효'라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서도 같은 취지의 1심 판결이 처음으로 내려졌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신당8재개발구역 내 일부 주민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도 않았는데 구청이 추진위 승인부터 내준 것은 위법하다"며 중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내주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살려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개발 · 재건축 추진 지역들이 정비구역 지정 전에 추진위를 만든 것은 국토해양부가 2003년 7월 재건축과 재개발 관련법을 통합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시행하면서 지침으로 추진위부터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해 2월 법령에서 추진위 설립 시기를 정비구역 지정 이후로 명확히 하기 전까지 전국에서 700~800개 이상의 추진위가 설립됐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