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실.중소기업청을 대상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각종 현안을 놓고 여야 의원들의 추궁과 질타가 쏟아진다.

공무원과 의원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때마다 회의장 가운데 앉은 한 여성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발언자의 얼굴을 확인할 뿐 펜을 잡은 손 외에는 어떤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귀와 손에 집중하며 회의장의 음성을 충실히 담아내는 그녀의 얼굴 역시 무표정 그 자체다. 15분쯤 흘렀을까 맞은편에 또 다른 속기사가 자리에 앉는다. 동료에게 무사히 바통을 넘긴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간다. 긴 회의 동안 그렇게 몇 번의 교대가 이뤄진다.

오후 8시.마침내 감사가 종료되고 20년 경력의 베테랑 속기사 엄의숙씨(45)의 10시간에 걸친 펜과의 싸움도 끝이 났다. 일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식사도 하지 못한 엄씨를 여의도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국정감사 기간이라 바쁘겠네요.

"국회 속기사에겐 정기국회와 국정감사가 이어지는 요즘이 가장 바쁜 철이죠.오늘은 그래도 일찍 끝난 편이에요. 좀 있으면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할 텐데 그때는 밤을 새우고 새벽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거든요. 처녀 땐 젊은 여자가 허구한날 새벽에 귀가하곤 하니까 이웃들한테 이상한 오해를 받기도 했죠.속기사들은 결혼도 정기국회는 물론 임시국회가 열리는 2,4,6,8월을 피해야 하다 보니 5월에 가장 많이 몰리는 편이에요. (웃음)"

어떤 계기로 속기사를 하게 됐나요.

"사실 제가 대학(이화여대 화학교육과)을 졸업하던 무렵(1988년)만 해도 속기사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았어요. 당시 국민적인 관심사였던 5공 청문회가 연일 생중계되면서 매일같이 현장을 지키던 속기사도 자연스레 부각된 거죠.저 역시 그래서 속기사에 대한 동경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우연히 국회 속기사 양성소 모집공고를 보고 가져오신 거예요. 그래서 지원했는데 운좋게 붙었죠."

엄씨는 1990년 국회 공무원 9급 일반행정직(속기직)으로 들어와 내년이면 근무한 지 만 20년이 된다. 그동안 승진을 거듭해 현재 직급은 사무관 대우인 6급이다.

컴퓨터가 아닌 펜으로 속기를 하던데요.

"요즘에는 컴퓨터 속기가 일반화됐지만 제가 들어올 당시만 해도 수필 속기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국회에 따로 속기사 양성소까지 뒀어요. 저도 여기서 2년간 교육을 받고 속기사가 됐죠.하지만 1995년부터 컴퓨터 속기사를 함께 뽑기 시작하면서 예산상의 문제로 수필 속기는 공식 폐지됐습니다. 지금도 외부에 속기학원은 남아 있지만 수필 속기를 가르치는 곳은 없어요. "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어떻게 다 받아쓸 수가 있는 거죠.

"한글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닙니다. 속기를 위한 언어체계가 따로 있어요. 이 때문에 반드시 1~2년간의 교육기간이 필요해요. 일반인들은 속기사가 쓴 노트를 보더라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혹자는 아랍문자같다고 하기도 해요. 따라서 이렇게 속기로 받아쓴 것을 재정리하는 '번문'이라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5분 정도 속기한 것을 번문하려면 50분 걸려요. 컴퓨터 속기의 경우 번문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죠."

얼마나 빨리 쓸 수 있나요.

"속기사 1급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1분에 320자 이상은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컴퓨터 타수 기준으로 말하자면 1000타 정도는 쳐야 하는 거죠."

사투리나 부정확한 발음도 많을 텐데 정확하게 쓰기가 쉽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더욱 집중해야죠.속기사는 남들이 다같이 박장대소를 하더라도 절대 웃어서는 안 돼요. 물론 분위기에 휩쓸려 화를 내거나 슬퍼해서도 안 되겠죠.그리고 발언자의 코멘트뿐만 아니라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까지 기록해야 해요. "

속기사를 특히 힘들게 했던 국회의원이 있나요.

"모 그룹 회장이기도 한 주모 전 의원이 속기사들 사이에 악명(?) 높았죠.발음이 또박또박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버려 알아듣기가 좀체로 쉽지 않았어요. 상임위 내에 고정된 좌석도 속기석에서 가장 먼 곳이어서 입 모양까지 잘 보이지 않아 고생이 더했죠.반면 법사위원장을 지냈던 김모 전 의원 같은 분은 발음이 정확한 데다 법안 심사가 끝날 때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했는지 완벽하게 정리해줘 신망이 높았죠.김 전 의원은 보좌관들에게도 지시를 항상 세 번씩 반복해 정확한 의사전달이 이뤄지도록 하는 등 배려를 잘하는 분으로 유명했어요. "

20년 동안 국회를 지킨 역사의 산증인인데 에피소드도 많겠네요.

"1999년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농협과 축협의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농업협동조합법'을 심의하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열심히 속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앞에 사람의 흰 살결이 보이는 거예요. 당시 축협 회장이던 신구범씨가 허연 배를 드러낸 뒤 손에 들고 있던 칼로 그대로 그어버렸지요. 그러자 회의실에 난리가 났어요. 여기자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고 저 역시 순간적으로 소리를 칠 뻔했어요. 하지만 제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꾹 참고 속기를 계속했지요. "

이 상황은 1999년 8월12일 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록에 '신구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장,장관석 앞으로 나오면서 할복 자해'라고 엄씨에 의해 기록돼 있다.

어떻게 그런 냉정을 유지하나요.

"집중력 덕분이겠죠.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데 마음 둘 여유가 없는 거죠.한 가지에만 집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곳에 둔감해지는 것 같아요. 또 어떠한 돌발 상황이 닥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쭉 해온 점도 있고요. "

습관처럼 돼 버렸군요.

"사실 제가 이 일을 오래하다 보니 듣기만 하고 말을 잘 하지 않는 버릇까지 생겼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는 왜 얘기를 하면 대답을 잘 안 하느냐'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아요. "

남편도 속기사라면서요.

"결혼할 당시에는 둘 다 속기사였는데 남편은 업무를 바꿔 지금은 일반 행정사무를 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편과 같은 일을 하다보니 제 생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죠.가사도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나눠 하는 것처럼 생각해 주고요. 특히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 둘을 낳아 기를 땐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죠."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뭔가요.

"현대판 사관(史官)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20년을 한결같이 일해 왔어요. 앞으로도 제 힘이 다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이곳을 지키고 싶어요. 또 점차 사라져가는 수필 속기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해 나갈 생각이에요. 수필 속기는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인데 컴퓨터에 밀려 사라지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

이호기 기자 · 백상경 인턴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