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전 종정 성철 스님(1911~1993년)은 생전에 화두를 붙잡고 참선하는 수좌들에게 "책을 보지 마라"고 강조했다. 화두에 전념해야지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정작 성철 스님 자신은 대단한 독서가요 애서가였다. 불교 경전은 물론 철학,역사,현대물리학까지 독서 취향도 다양했고,읽은 책의 목록을 일일이 만들고 내용까지 요약했다. 1950년대에는 일본판 '신수대장경'이 너무 비싸다며 대만판 복사본을 구해서 읽었을 정도였다.

성철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모셨던 해인사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은 "큰스님은 평생 한 번도 책을 남에게 빌려 준 적이 없었고,빌려온 책을 돌려준 적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백련암 서고에는 성철 스님이 직접 구해 읽은 책이 5000권 넘게 소장돼 있다.

이 백련암 서고에서 희귀본 고서가 발견됐다. 원택 스님은 15일 "지난 4월 중순 백련암 장경각 서고의 장서를 정리하던 중 16세기에 간행된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언해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십현담요해'는 당나라 동안상찰 선사가 한 자리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생활 속의 실천을 강조하는 게송(선시) 10편을 지어 엮은 '십현담'에 매월당 김시습(1435~1493년)이 1475년 주석을 붙인 책.이번에 발견된 언해본은 한문으로 된 '십현담요해'를 이로부터 73년 뒤인 1548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한글로 풀이해 한문과 한글을 혼용한 언해본으로 판각한 것이라고 원택 스님은 서병패 문화재청 서지 전문위원의 고증을 인용해 설명했다.

언해본은 가로 20.0㎝,세로 12.2㎝ 크기의 판목에 10행 21자씩을 새긴 다음 가로 24.9㎝,세로 15.0㎝의 종이에 인쇄한 44쪽 분량의 책으로,문화재 서지 목록이나 국립도서관 및 각 대학 서지 목록에도 없는 희귀본 또는 유일본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원택 스님은 "조선 세조 때인 1461년 간경도감이 설치돼 많은 불경을 언해했으나 성종 때인 1471년 간경도감이 폐지된 이후로는 국가가 간행한 언해본은 없으며 대신 사찰에서 필요에 따라 언해본을 만들었다"며 "이번에 발견된 '십현담요해 언해본'은 간경도감 폐지 이후 70여년간의 어휘와 문법 변화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원택 스님은 "1960년대에 큰스님이 문경 김용사에서 50일가량 대중법문을 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 중에 '십현담'이라고 직접 꼬리표를 붙여놓으신 게 있어 녹취 내용을 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백련암 서고에는 이 언해본 외에도 귀중한 고서와 자료들이 많이 있어 목록을 만들어 서지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십현담요해' 언해본에 대해서는 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다음 달 8일 대한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성철 스님 열반 16주기 추모학술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