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액 지원에 '모럴 해저드 경게론'…철저한 사후관리 주문

은행 건설사 일반기업 등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자금 지원 대책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불이 붙고 있다.

한쪽에서는 무분별한 외화 차입(은행)과 수요를 고려치 않은 주택 건설(건설사),일부 투기 목적이 포함된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일반 기업) 등으로 방만한 경영을 해온 은행과 기업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반대로 지금은 그런 문제를 따지기 전에 금융시장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강력한 시장 안정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동의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의 지원만 기다리며 자구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은행과 기업은 걸러내야 한다는 점이다. 철저한 사전ㆍ사후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구 노력 반드시 전제돼야"

정부는 우선 은행에 부족한 달러를 직접 공급(한국은행과 함께 300억달러 규모)하고 대외 채무를 지급보증(1000억달러 규모)키로 했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은행의 외화 유동성 부족은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근본 원인"이라며 "시중은행이 연말까지는 자금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금의 유동성 위기가 은행들이 그동안 자산 경쟁 차원에서 대출을 늘리기 위해 해외에서 무리하게 외화 차입을 해온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따라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정부의 자금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최소한의 자구 노력이 병행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화 조달의 지급보증 수수료에 어느 정도의 '벌칙'을 추가하는 방안과 함께 은행이 갖고 있는 외화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강구하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휘청거리면 나라 전체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이번 조치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본다"며 "다만 자금을 지원하기 전에 스스로 외화를 조달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정부가 철저히 검증해 선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까운 세금 효율적으로 써야"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이어 건설업체와 일반 기업에 대해서도 최대 12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로 부도가 나는 것을 막고 금융회사의 추가 부실 가능성도 예방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자칫 건설업계의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고 성실하게 우량 기업을 일궈 온 경제인들에게는 허탈감을 줄 수 있는 조치"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왕 하려면 아까운 국민 세금이 진짜 어려운 기업에 돌아가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득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철저한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평소 현금 흐름을 잘못 관리해온 기업에까지 일률적으로 똑같은 조건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일단 급한 돈은 꿔주더라도 사후에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한다는 전제로 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건설업체나 기업들이 우량 자산은 별도로 보유하면서 어차피 팔아야 할 '애물단지' 자산만 공공부문에 넘기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