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논술의 출발점… 비판적 시각에서 읽어 보자!

이 코너에서는 논술 공부를 한다면서 무조건 어려운 고전을 들고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논술공부의 출발점으로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줄 것이다.

즉,인간과 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이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코너에서 비판적 교과서 읽기를 거듭하다 보면,교과서가 곧 논술교재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비판은 교과서를 저술하신 선생님들(교수,교사)의 지적 능력에 대한 도전이다.

“교과서가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고 지적 권위에 도전해 보자.단,교과서 저술자의 생각이 무엇인지,근거는 적절한지,또다른 중요한 내용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지,다른 분야의 지식과 결합하여 우리 사회의 이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인지 등,합리적인 비판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학생들의 비판정신은 교과과정의 기본적 내용을 서술하는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잘 길러질 수 있으며,이것이 논술교육이 의도하는 바람직한 교실의 모습이다.

교과서 외에 무엇을 읽을 것인가의 문제도 이런 과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사회탐구 영역

'곳간(곡식창고)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을 곰곰이 음미해보자. 내 배가 불러야 다른 사람의 사정도 돌아보게 된다는 뜻이다.

과연 늘 그런가?

욕망이라는 단어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욕망이라는 어휘가 사용되는 여러 맥락들을 살펴보면 과연 이 주제가 한 번의 수업으로 다룰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욕망과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욕망,생산과 성취의 동기로서의 욕망과 부질없는 신기루 같은 욕망,이기적 욕망과 이기적 관점을 초월한 욕망 등 기준도 많고 그 기준마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이 녹아 있다.

따라서 권하건대, 욕망이라는 어휘를 글 속에서 만나게 되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인간은 배고픔, 갈증 등 기본적인 생리적 동기가 만족되면, 다음에는 안전, 즉 위험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안정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추구한다.

그리고 안전 추구의 동기가 만족되면,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동기가 작동한다.

바로 이 소속감과 사랑의 동기가 대인 동기이다.

즉 인간은 생리적 부족함을 충족시키고 신체적 위험에 대한 안전이 확보되면, 곧 사회적 동기가 작용한다.

―고교 『심리학』(교학사,177쪽)



누구나 배가 고프고,위험을 회피하고자 하고,사랑을 원하며, 호기심에 잠을 못 이루며, '엄마 친구 아들'만큼 완전한 자신을 만나고픈 욕구를 지니고 살지만, 이런 욕구들에도 순서와 위계가 있다.

첫 번째 기준은 동물로서 인간의 욕구와 보다 사회적이고 추상적인 욕구를 구별한다.

이 구별을 세분화한 것이 위 매슬로(Maslow A H 1908~1970,『존재의 심리학』)의 「욕구 단계설」이다.

욕구위계의 핵심은 동물적이고 보편적인 생리적 동기가 충족되지 않은 인간에게는 사회적 욕구, 자아 욕구가 발현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자기 욕구에서 출발한 자발적 사회적 상호작용도 발달하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극히 궁핍한 처지에서 배고픔과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생활을 하는 인간은 사회질서에 반항하고 범죄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뜻일까? 그렇다.

매슬로의 욕구위계가 예외 없는 진실이라면 말이다.

자유 민주주의(정치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경제적 자유주의)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실제로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는 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간의 내적 갈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보통 선거권을 전제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민주적 요소와 불평등한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는 시장 자본주의 간에는 간격이 있으며,근본적인 긴장 관계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교 『윤리와 사상』(159쪽)



매슬로의 이론에서 출발해 자발적 질서유지와 범죄방지를 위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사회화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도 문제다.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빵을 사줄 것인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보장해준다면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누가 책임을 지고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다수결 원리에 따른다는 데 있다.

모두의 생리·안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부를 소유한 사람은 수적 열세에 있기 때문에,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듯한 모양새가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우리 사회의 기본적 쟁점 가운데 하나이고, 논술문제의 대표적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잠깐! 만약 매슬로가 틀렸다면? 만약 생리와 안전의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한 인간에게도, 혹은 그런 결핍과 고난으로부터 오히려 타인과 공동체의 질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우러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다음 교과서 지문을 보자.



공자는 사회 성원들이 제각기 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할 때[定名],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이룩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진정한 사회 질서는 강제된 법률이나 형벌보다 도덕과 예의로 교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중략) 또 통치자는 재화의 적음보다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점을 걱정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분배의 형평성도 강조하며
(76쪽)

석가모니가 깨달은 네 가지 진리를 사성제라고 하는데, (중략) 둘째 집제는 고통이 모여 일어나는 원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 모든 사물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집착을 고집해 고통의 원인을 모여들게 한다는 것이다.(78쪽)


―이상 고교 『윤리와 사상』


공자를 위시한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인간 욕망은 인간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가장 먼저 탐구했던 주제였다.

인간의 욕망을 규정하고 나서야 사회와 개인에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석가모니와 장자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에게 나와 타인의 분별과 개인적 욕망 그 자체를 다스리는 방법을 직접 가르치고, 공자는 욕망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삼아 이들을 가장 조화롭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친 점이 달랐을 뿐이다.

석가의 가르침이 언뜻 비현실적인 듯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겸양과 검소를 실천한다.

그런데 우리의 몸과 정신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과연 비난받아야 할까? 이런 점에서 공자와 석가모니는 욕망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입장을 드러낸다.

석가모니는 문제 원인을 지목하고 제거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공자와 그 제자들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그것들을 다스리는 데에도 관심을 둔다.

수리 영역

이번 '욕망' 논제는 그래프와 함수, 변수와 상수의 개념과 활용을 독특한 방식으로 묻고 있다.

사용된 수학적 개념은 매우 기초적이다.

하지만 실제 인간 욕망의 본질을 수식과 그래프로 표현하거나 반대 수식과 그래프로부터 의미와 의도를 추출해내는 작업은 난생 처음 해보았을 것이다.

특히 언급할 것은, 여러 개의 미지수를 가진 관계식을 해석함에 있어서 자신이 알고 싶은 두 개의 변수 사이의 관계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상수로 처리하는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잘 알아두라는 것이다.

나머지 미지수가 정말 상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부여하는 일종의 기술적 조작이다.

그래야 두 개의 변수 간의 관계가 명료하게 드러나고 좌표평면에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제에서 소유, 행복, 욕망의 세 가지 변수가 등장했는데, 그래프는 소유와 욕망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따라서 행복이라는 변수를 습관적으로 상수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그래프의 형태를 세밀화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어야 겠다.

예컨대 [조언 A]가 행복의 최대치를 상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래프는 수평축과 수직축이 무한으로 확장된다기보다는 최대수치에서 끝나는 '상자형' 그래프일 것이다.

참고로 아인슈타인도 젊은 시절에 우주의 팽창을 부정하기 위해 상수(우주상수)를 도입했다가 만년에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새로운 지식은 상수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에이브러엄 H.매슬로의 『존재의 심리학』에 대한 해설은 생글생글 89호(3월19일자) <고전읽기> 코너를 참조하세요.

윤대경 생글생글i 논술연구소장 ydkby@ed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