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인재 기용 원칙은 '의인불용 용인물의(疑人不用 用人勿疑)'이다.

'믿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일단 맡겼으면 끝까지 믿는다'는 것.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에게서 배운 용인술이다.

이 회장은 이 원칙에 의거해 신뢰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냉정할 정도로 단호한 인사 조치를 단행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이런 신뢰에 근거해 때로는 인사 원칙을 깨뜨리는 파격을 보이기도 한다.

이 회장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는 전문경영인 중 한 명이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79)이다.

강 전 회장은 1973년 삼성전자 사장을 맡은 이후 1998년까지 무려 25년간 삼성전자를 이끌며 반도체와 통신사업의 기틀을 확고히 다진 대표적인 전문경영인.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삼성전자를 맡아왔던 강 전 회장에 대한 이 회장의 신뢰는 무척 두터웠다.

1998년 삼성전기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강 전 회장이 2000년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히자,이 회장이 극구 만류하고 나섰을 정도다.

이 회장은 퇴임한 강 전 회장을 '삼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며 최고 예우로 보답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68)에 대한 이 회장의 신뢰도 대단히 두텁다.

이수빈 회장은 19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 출신으로 제일모직과 삼성정밀공업(현 삼성테크윈),삼성증권 등을 거쳐 삼성생명 회장을 맡았다.

이 회장은 2002년 이수빈 회장이 "후배 경영진을 키우기 위해 사퇴하겠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삼성사회봉사단 등의 조직을 맡겼다.

이수빈 회장은 지금도 경영 2선에서 이 회장을 돕고 있다.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67)은 이 회장의 파격적인 용인술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그는 행정고시 4회 출신으로 감사원을 거쳐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비(非)공채 출신.이 회장은 1993년 당시 삼성시계 사장을 맡고 있던 현 전 회장을 그룹 내 최고 요직인 비서실장에 전격 임명했다.

이 회장의 용인술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전문경영인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64)이다.

1997년부터 올해까지 11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윤 부회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엔지니어 출신 CEO.그는 삼성전자 부사장 시절인 1980년대 중반 VCR사업부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잠시 회사를 떠나기도 했으나,이 회장은 그의 능력을 높이 사 1988년 다시 불러들였다.

또 이 회장은 과거에 "계열사 사장들은 60세가 될 때까지만 중용하겠다"고 밝혔으나,윤 부회장에 대해서는 60세를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중용하고 있다.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장(61)도 이 회장의 용인술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전문경영인이다.

1996년 회장 비서실장에 오른 이 실장은 1998년에 설립된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를 지금까지도 맡으며 이 회장의 무한한 신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