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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기차, 안상학

      밤기차   안상학   칠흑 같은 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마에 불 밝히고 달리는 것은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기다리는 너에게 쓸쓸하지 말라고 쓸쓸하지 말라고 내 사랑 별 빛으로 먼저 보내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夜間列車(야간열차) 漆黑夜中向君路(칠흑야중향군로) 額上架燈力飛馳(액상가등력비치) 此決非是路不熟(차결비시로불숙) 君在遠處待人兒(군재원처대인아) 唯願吾君不蕭索(유원오군불소삭) 先送愛心以星煇(선송애심이성휘)   [주석] * 夜間列車(야간열차) : 밤기차, 야간열차. 漆黑夜中(칠흑야중) :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 向君路(향군로) : 그대에게 가는 길. 額上(액상) : 이마 위. / 架燈(가등) : 등을 달다. / 力飛馳(역비치) : 힘껏 나는 듯이 달리다. 此(차) : 이, 이것. / 決(결) : 결코. / 非是(비시) : ~이 아니다. / 路不熟(노불숙) : 길이 익숙하지 않다, 길에 익숙하지 않다. 君在(군재) : 그대가 ~에 있다. / 遠處(원처) : 먼 곳. / 待人兒(대인아) : 나를 기다리다. ‘人兒’는 친애하는 사람에 대한 애칭으로 흔히 애인(愛人)에 대하여 쓴다. 唯(유) : 오직, 그저. / 願(원) : ~을 원하다, ~을 바라다. / 吾君(오군) : 그대. / 不蕭索(불소삭) : 쓸쓸하지 않다. 先(선) : 먼저. / 送(송) : ~을 보내다. / 愛心(애심) : 사랑하는 마음. / 以星煇(이성휘) : 별빛으로.   [직역] 밤기차   칠흑 같은 밤에 그대 향해 가는 길 이마 위에 등 달고 힘껏 달리나니 이는 결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대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때문 그저 그대 쓸쓸하지 말길 바래 사랑의 맘 먼저 별빛으로 보내는 것   [한역 노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여행을 할 때마다 늘 3등 열차를 이용

    • 강물, 오세영

      ​강물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태헌의 한역] ​江水(강수) 切莫只看前方進(절막지간전방진) 江水逢壁轉身行(강수봉벽전신행) 切莫躁急亦促急(절막조급역촉급) 瀑布激流至沼平(폭포격류지소평) 無心江水到永遠(무심강수도영원) 空虛心舟達充盈(공허심주달충영...

    • 연잎, 문근영

      연잎   문근영   살랑거리는 연못의 마음   잡아 주려고   물 위에 꽂아놓은   푸른 압정   [태헌의 한역] 蓮葉(연엽)   淵心蕩漾(연심탕양) 欲使靜平(욕사정평) 水上誰押(수상수압) 靑綠圖釘(청록도정)   [주석] * 蓮葉(연엽) : 연잎. 淵心(연심) : 연못 한 가운데, 연못의 마음. / 蕩漾(탕양) : (물결 따위가) 살랑거리다. 欲使(욕사) : ~로 하여금 …하게 하다. 여기서는 ‘使’ 뒤에 ‘淵心’이 생략되었다. / 靜平(정평) : 평정(平靜). 고요하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水上(수상) : 물 위. / 誰押(수압) : 누가 눌러두었나?, 누가 꽃아 두었나? 靑綠(청록) : 청록 빛. 푸르다. / 圖釘(도정) : 압정(押釘)의 중국식(中國式) 표현. 그림 따위를 고정시키기 위한 쇠못이라는 뜻이다.   [직역] 연잎   연못의 맘 살랑거려 고요하게 해주려고 물 위에 누가 꽂았나? 푸른 압정!   [한역노트] 바람에 살랑거리는 수면(水面)을 연못의 마음으로, 수면 위에 납작 엎드려 있는 연잎을 그 마음을 잡아주는 압정(押釘)으로 비유한 이런 동시(童詩)는 주된 독자인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유쾌하고 즐겁게 하기에 충분할 듯하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연못의 마음”이라는 시구(詩句)는 자연스레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으로 생각의 무게중심을 옮겨가게 한다. 연못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호수(湖水)에서 무시로 흔들리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잡아주어야 할까? 압정은 일종의 못인지라 아무래도 따끔거릴 테니 무엇인가 묵직한 것으로 눌러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예로부터 무엇인가를 눌러두는 돌을 ‘누름돌’로 불러왔다. 역자에게는

    • 하루살이와 나귀, 권영상

      하루살이와 나귀   권영상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 줄래?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 내일도 산책 있어. 모레, 모레쯤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태헌의 한역] 蜉蝣與驢子(부유여려자)   予復欲逢君(여부욕봉군) 暮前能不能(모전능불능) 蜉蝣問驢子(부유문려자) 驢子卽答應(여자즉답응) 今夕固不可(금석고불가) 明日有逍遙(명일유소요) 明後始有隙(명후시유극) 君意正何如(군의정하여) 蜉蝣含淚轉身曰(부유함루전신왈) 爾汝全然不知予(이여전연부지여)   [주석] * 蜉蝣(부유) : 하루살이. / 與(여) : 연사(連詞). ~와, ~과 / 驢子(여자) : 나귀. 予(여) : 나. / 復(부) : 다시. / 欲(욕) : ~을 하고자 하다. ~을 하고 싶다. / 逢君(봉군) : 그대를 만나다, 너를 만나다. 暮前(모전) : 저물기 전, 해 지기 전. / 能不能(능불능) : ~을 할 수 있나 없나?, ~이 될까 안 될까? 의문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問(문) : ~을 묻다, ~에게 묻다. 卽(즉) : 즉시, 곧바로. / 答應(답응) : 응답하다, 대답하다. 今夕(금석) : 오늘 저녁. / 固(고) : 진실로, 정말로.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不可(불가) : 불가하다, 안 된다. 明日(명일) : 내일. / 有逍遙(유소요) : 산보(散步)가 있다. 明後(명후) : 모레. 명후일(明後日)을 줄여 사용한 말이다. / 始(시) : 비로소. 아래의 ‘有隙’과 함께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有隙(유극) : 틈이 있다, 짬이 있다. 君意(군의) : 그대의 생각, 너의 생각. 아래의 ‘正’과 함께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正(정) :

    • 내 안의 당신, 김영재

      내 안의 당신   김영재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를 버려야 하듯 당신을 만났으니 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내 안에 자리한 당신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태헌의 한역] 吾中吾君(오중오군)   渡江應捨舟(도강응사주) 逢君已棄吾(봉군이기오) 吾中吾君兮(오중오군혜) 吾君卽是吾(오군즉시오)   [주석] * 吾中(오중) : 내 속의, 내 안의. / 吾君(오군) : 그대, 당신. 渡江(도강) : 강을 건너다. / 應(응) : 응당. / 捨舟(사주) : 배를 버리다. 逢君(봉군) : 당신을 만나다. / 已(이) : 이미. / 棄吾(기오) : 나를 버리다. 兮(혜) : ~야! ~여! 호격(呼格) 어기사(語氣詞). 卽是(즉시) : 바로 ~이다, 곧 ~이다.   [직역] 내 안의 당신   강을 건너면 응당 나룻배를 버리듯 당신을 만나 이미 나를 버렸습니다 내 안의 당신이여! 당신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한역 노트] 이 시의 제1행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를 버려야 하듯”은,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뜻의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는 성어(成語)와 일맥상통한다. 불교에서 유래한 이 성어는, 열반의 언덕에 이르면 그제까지 방편으로 삼았던 정법(正法)이라는 뗏목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하게 장자(莊子)는,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야 한다.”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을 설파(說破)하였다. 이런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모종의 근본을 확립하면 지엽적인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소한 일에 얽매여 큰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시는, ‘사벌등안’이나 ‘득어망전’이 현시(顯示)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 사랑, 정호승

      사랑 정호승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태헌의 한역] 愛(애) 花欲離水不可得(화욕리수불가득) 鳥欲離枝不可得(조욕리지불가득) 月欲離地不可得(월욕리지불가득) 吾欲離汝不可得(오욕리여불가득) [주석] * 愛(애) : 사랑. 花(화) : 꽃. / 欲離(욕리) : ~을 떠나려고 ...

    • 은발이 흑발에게, 유안진

      은발이 흑발에게   유안진   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태헌의 한역] 銀髮向於黑髮(은발향어흑발)   昨日余如汝(작일여여여) 明日汝如余(명일여여여)   [주석] * 銀髮(은발) : 은발, 백발(白髮), 흰머리. / 向於(향어) : ~에게. / 黑髮(흑발) : 흑발, 검은 머리. 昨日(작일) : 어제. / 余如汝(여여여) : 나는 그대와 같다. 明日(명일) : 내일. / 汝如余(여여여) : 그대는 나와 같다.   [직역] 은발이 흑발에게 어제는 내가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   [한역 노트] 이 시는 역자가 여태 한역한 시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다. 정확하게는 한역시 본문에 사용된 한자(漢字) 수가 가장 적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언고시(五言古詩) 2구로 재구성한 한역시에서 중복 사용된 글자를 제외하면 단 6자로 이루어진 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는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인간 세상의 철리(哲理) 하나가 오롯이 구현(具現)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시가 꼭 길어야만 하겠는가? 시인은 백발에 대한 생각이나 감회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에, 색깔이 다른 머리카락끼리의 대화라는-기실은 일방적인 ‘들려줌’이지만- 색다른 설정을 통하여 백발의 비애를, 정확하게는 그런 백발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이들의 비애를 에둘러 노래하였다. ‘양자강(揚子江)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말과 비슷하게, 어떤 흑발이든 결국 세월의 물결에 밀려 백발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역(不可逆)의 섭리를 담담하게 얘기한 것이다. 나이는 누구나 한 해에 한 살씩 더하는 것이지만, 백발이 성하는 속도는 사

    • 부자지간, 이생진

      부자지간 이생진 아버지 범선 팔아 발동선 사이요 얘 그것 싫다 부산해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자동차 사이요 얘 그것 싫다 육지놈 보기 싫어 그것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어머니 사이요 그래 뭍에 가거든 어미 하나 사자 [태헌의 한역(漢譯)] 父子之間(부자지간) 父邪今賣帆船買機船(부야금매범선매기선) 兒兮余惡船中聲紛繽(아혜여오선중성분빈) 父邪然則賣船買動車(부야연즉매선매동차) 兒兮余嫌車上看陸人(아혜여혐차상간륙인) 父...

    • 행복, 나태주

      행복 나태주 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여기 그리고 당신 [태헌의 한역] 幸福(행복) 不是昨日其所(불시작일기소) 亦非明日彼處(역비명일피처) 但只今日此席(단지금일차석) 而且眼前爾汝(이차안전이여) [주석] * 幸福(행복) : 행복. 不是(불시) : ~이 아니다. / 昨日(작일) : 어제. / 其所(기소) : 그곳, 거기. 亦非(역비) : 또한 ~이 아니다. / 明日(명일) : 내일. / 彼處(피처)...

    • <송춘(送春) 특집> 봄이 간다커늘(시조), 무명씨

      봄이 간다커늘   무명씨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 가니 낙화 쌓인 곳에 간 곳을 모르노니 유막(柳幕)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태헌의 한역] 今春云將去(금춘운장거) 載酒欲送行(재주욕송행) 落花處處積(낙화처처적) 不知在何方(부지재하방) 柳幕黃鳥曰(유막황조왈) 昨日離此鄕(작일리차향)   [주석] 今春(금춘) : 금년 봄, 올 봄. / 云(운) : ~라고 말하다, ~라고 하다. / 將去(장거) : 장차 가려하다, 장차 떠나려 하다. 載酒(재주) : 술을 싣다. / 欲(욕) : ~을 하고자 하다. / 送行(송행) : 전송하다, 배웅하다. 落花(낙화) : 낙화, 떨어진 꽃. / 處處(처처) : 곳곳에. / 積(적) : 쌓다, 쌓이다. 不知(부지) : ~을 알지 못하다. / 在(재) : ~에 있다. / 何方(하방) : 어느 쪽, 어느 방향. 柳幕(유막) : 버들막. 휘늘어진 버들가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버들 숲을 가리키기도 한다. / 黃鳥(황조) : 노란 새, 꾀꼬리. / 曰(왈) : ~라고 말하다, ~라고 하다. 昨日(작일) : 어제. / 離(리) : ~를 떠나다. / 此鄕(차향) : 이 고을, 이 마을, 이곳.   [직역] 올 봄이 곧 갈 것이라 하여 술을 싣고 전송하려 했더니 낙화는 곳곳에 쌓여 있는데 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네 버들 숲에서 꾀꼬리 말하길 어제 이곳을 떠났다고 하네   [漢譯 노트] 다음 주면 벌써 6월이니 지금이 봄이라 하더라도 가장 막바지 봄이겠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 봄을 돌아보면서 역자는 특별히 현대시가 아닌 옛 시조 한 수를 한역해 보았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조가 가는 봄을 노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송춘(送春)’을 노래한 시편(詩篇)과는 사뭇 다른 정서

    • 우주를 껴안다, 김세연

      우주를 껴안다   김세연   꽃을 보듯 그대를 보고 그대를 보듯 꽃을 본다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 향기 다할까 문 활짝 열어 와락 우주를 껴안는다   꼼짝 마라, 그대 이제 내 안에 있으니   [태헌의 한역] 擁太空(옹태공)   看君若看花(간군약간화) 看花若看君(간화약간군) 花香乘春風(화향승춘풍) 暗暗敲心門(암암고심문)   開門憐香盡(개문련향진) 猛然擁太空(맹연옹태공) 千萬勿欲動(천만물욕동) 君今在吾中(군금재오중)   [주석] * 擁(옹) : ~을 껴안다. / 太空(태공) : 먼 하늘, 우주(宇宙). 이 시에서는 우주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看君(간군) : 그대를 보다. / 若(약) : ~과 같다. / 看花(간화) : 꽃을 보다. 花香(화향) : 꽃향기. / 乘(승) : ~을 타다. / 春風(춘풍) : 봄바람. 暗暗(암암) : 몰래. / 敲(고) : ~을 두드리다. / 心門(심문) : 마음의 문. 開門(개문) : 문을 열다. / 憐香盡(연향진) : 향기가 다할까 아까워하다. 猛然(맹연) : 갑자기, 와락. 千萬(천만) : 절대로, 결코. / 勿欲動(물욕동) : 움직이려고 하지 말라. 今(금) : 이제, 지금. / 在吾中(재오중) : 내 속에 있다, 내 안에 있다.   [직역] 우주를 껴안다   꽃을 보듯 너를 보고 너를 보듯 꽃을 본다 봄바람을 탄 꽃향기가 몰래 마음의 문 두드린다   향기 다할까 아까워 문 열고 와락 우주를 껴안는다 절대 움직이려 하지 마라 그대 이제 내 안에 있으니   [漢譯 노트] 노래가 가수의 전유물이 아니듯 시 역시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위의 시를 쓴 김세연씨는 시집을 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문학잡지 등에 시를 게재한 적도 없다. 그러나 시에 대한 열정만

    • 파도, 유승우

      파도 유승우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 【태헌의 한역】 波濤(파도) 問於波濤曰(문어파도왈) 何不入夢中(하불입몽중) 亦不暫時休(역불잠시휴) 晝夜白洶溶(주야백흉용) 波濤乃對曰(파도내대왈) 不興吾名空(불흥오명공) [주석] * 波濤(파도) : 파도. 問於(문어) : ~에게 묻다. / 曰(왈) : ~라...

    •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태헌의 한역(漢譯)] 慰吾(위오)   歪斜飛(왜사비) 尋花坐(심화좌) 看蝴蝶(간호접) 吾心邪(오심야)   [주석] * 慰吾(위오) : 나를 위로하다. 歪斜(왜사) : 비뚤어지다. / 飛(비) : 날다. 尋花(심화) : 꽃을 찾다. / 坐(좌) : 앉다. 看(간) : ~을 보다, ~을 보라. / 蝴蝶(호접) : 나비. 吾心邪(오심야) : 내 마음아! 내 마음이여! ‘邪(야)’는 호격(呼格) 조사로 사용되었다.   [직역]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아도 꽃 찾아 앉나니 나비를 보아라, 내 마음아!   [한역 노트] 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의 제목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한 시도 있고 꼭 그렇지 않은 시도 있다. 함민복 시인의 이 시는 분명히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제목에 쓰인 ‘위로’라는 말의 뜻으로 보아 일단 나를 위로할 시기는 내가 기쁘거나 즐거울 때는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가 모종의 일 내지 언행(言行) 등으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슬플 때일 것이다. 살다 보면 나를 위로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그 위로라는 것을 타인에게 받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워두거나 찾아야 한다. 시인은 나비의 비행(飛行)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나비는 몸이 지극히 가볍기 때문에 미약한 바람에도 비행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삐뚤삐뚤 날 수밖에 없지만 원하는 꽃자리는 정확하게 찾아간다. 나비가 삐뚤삐뚤 난다는 것은 사람이 울퉁불퉁한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 아리랑

        아리랑   [여음(餘音)]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설(辭說)] 1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2절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3절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4절 산천에 초목은 젊어나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태헌의 한역] 阿里郎(아리랑)   【餘音(여음)】 阿里郎阿里郎哦囉哩(아리랑아리랑아라리) 郎君越過阿里郎山嶺(낭군월과아리랑산령)   【辭說(사설)】 郎君棄我離我側(낭군기아리아측) 未行十里足生病(미행십리족생병)   靑天虛空星辰多(청천허공성진다) 吾輩人生心語盛(오배인생심어성)   豊年云來豊年來(풍년운래풍년래) 槿域江山總歲登(근역강산총세등)   山川草木益少柔(산천초목익소유) 人間靑春漸老硬(인간청춘점로경)   [주석] * 阿里郎(아리랑) :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자어 표기. ◎ 餘音(여음)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 본 가사의 앞, 뒤, 가운데에 위치하여 의미 표현보다는 감흥과 율조에 영향을 미치는 어절이나 구절을 이르는 말이다. 오는 위치에 따라서 앞 여음[初斂], 가운데 여음[中斂], 뒷 여음[後斂]으로 나누어진다. 哦囉哩(아라리) : 아라리의 한자어 표기. 郎君(낭군) : 여음 부분에서 생략된 것으로 추정하여 보충한,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한자어이다. / 越過(월과) : ~을 넘어가다. / 阿里郎山嶺(아리랑산령) : 아리랑 고개. ◎ 辭說(사설)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의 본 가사. 棄我(기아) : 나를 버리다. / 離我側(이아측) : 내 곁을 떠나다. 未行十里(미행십리) : 아직 10 리도 가지

    • 소쩍새, 이대흠

      소쩍새   이대흠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의 길   어린 새끼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행여 길 끊어질까봐 어미 소쩍새는 쑥독쑥독 징검돌 연이어 놓는다   골 깊은 봄밤 새끼 걱정에 쑥떡 얹힌 듯 목이 메어 목이 쉬어   【태헌의 한역(漢譯)】 杜鵑(두견)   夜來杜鵑鳴做路(야래두견명주로) 聲路暗裏亦不滅(성로암리역불멸) 稚子隨路能歸巢(치자수로능귀소) 母鳥猶恐路或絶(모조유공로혹절) 咕咕又咕咕(고고우고고) 不斷設跳磴(부단설도등) 春夜谷深處(곡심춘야처) 念兒憂子情(염아우자정) 恰如滞艾糕(흡여체애고) 咽塞嘶啞聲(인색시아성)   [주석] * 杜鵑(두견) : 이 역시(譯詩)에서는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본래 두견[두견새]과 소쩍새는 과(科)가 다르고, 주행성과 야행성으로 생태 또한 다르지만 예로부터 혼용하여 왔고 표기 역시 그러하였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杜鵑’이라는 어휘로 소쩍새를 대신하기로 한다. 보통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는 ‘제결(鶗鴂)’ 역시 두견새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夜來(야래) : 밤이 오다, 밤이 되다. / 鳴做路(명주로) : 울음으로 길을 만들다. ‘鳴’ 앞에 ‘以(이)’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聲路(성로) : 소리의 길, 소리가 만드는 길. / 暗裏(암리) : 어둠 속. / 亦(역) : 또, 또한. / 不滅(불멸) :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다. 稚子(치자) : 어린아이, 새끼. / 隨路(수로) : 길을 따르다, 길을 따라. / 能(능) : ~을 할 수 있다. / 歸巢(귀소) : (동물이) 집이나 둥지로 돌아가다. 母鳥(모조) : 어미 새. / 猶(유) : 오히려. / 恐(공

    • 한 송이 꽃, 도종환

        한 송이 꽃   도종환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태헌의 한역(漢譯)] 一枝花(일지화)   早春放綻花一枝(조춘방탄화일지) 於人一個疑問號(어인일개의문호) 君亦如此開花非(군역여차개화비)   [주석] * 一枝花(일지화) : 한 가지의 꽃. 한 송이 꽃. 早春(조춘) : 이른 봄. / 放綻(방탄) : (꽃이) 피어나다. / 花一枝(화일지) : 꽃 한 가지, 꽃 한 송이. 於人(어인) : 사람에게는. / 一個(일개) : 하나, 하나의. / 疑問號(의문호) : 의문 부호. 물음표. ‘?’ 君(군) : 그대, 당신. / 亦(역), 또, 또한. / 如此(여차) : 이와 같이, 이렇게. / 開花非(개화비) : 꽃을 피웠는가? 시구(詩句) 말미에 쓰이는 부정(否定) 부사 ‘不(불)’, ‘否(부)’, ‘未(미)’, ‘非(비)’ 등은 시구 전체를 의문형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梅花著花未(매화착화미)”는 “매화가 꽃을 피웠던가요?”의 뜻이다.   [직역] 한 송이 꽃   이른 봄에 핀 꽃 한 송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꽃을 피웠나요?”   [한역 노트] 이른 봄철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혹한(酷寒)이라는 고통을 잘 견뎌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꽃이 피는 것은 단풍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 매우 아픈 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꽃이 피었다는 것은 또 그런 아픔을 잘 참아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이 어찌 꽃만의 일이겠는가? 예술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듯,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의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꽃이 우리에게 묻는 것

    • 사월의 노래, 박목월

      사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아   [태헌의 한역(漢譯)] 四月之歌(사월지가)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閱讀維特信(열독유특신) 雲花發岸上(운화발안상) 短簫吹一陣(단소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無名港口裏(무명항구리) 卽今獨乘船(즉금독승선)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手書長長信(수서장장신) 軸草生岸上(축초생안상) 口笛吹一陣(구적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深深山谷裏(심심산곡리) 樹下看星辰(수하간성진)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주석] * 四月之歌(사월지가) : 4월의 노래.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木蓮(목련) : 목련. / 花影下(화영하) : 꽃그늘 아래. 閱讀(열독) : ~을 읽다. / 維特(유특) : 베르테르(Werther). 서양사람 이름. / 信(신) : 편지. 雲花(운화) : 구름 꽃. 구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 / 發(발) : (꽃 따위가) 피어나다. / 岸上(안상) : 언덕

    • 꽃의 마중, 신지영

      꽃의 마중   신지영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먼 데 있는 벌더러 잘 찾아오라고   마음으로는 백 리라도 걸어 마중 가겠지만 발로는 걸어갈 수 없으니 향기로 마중 나갔지   [태헌의 한역(漢譯)] 花之出迎(화지출영)   花葩不步養芬馨(화파불보양분형) 遙使遊蜂識道程(요사유봉식도정) 心也甘行百里遠(심야감행백리원) 難能脚走以香迎(난능각주이향영)   [주석] * 花之出迎(화지출영) : 꽃의 마중.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出迎’은 마중을 나가거나 나가서 마중함을 뜻하는 말이다. 花葩(화파) : 꽃. / 不步(불보) : 걷지 못하다. / 養芬馨(양분형) : 향기를 기르다. ‘芬馨’은 꽃다운 향기, 곧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이다. 遙(요) : 멀리, 아득히. / 使遊蜂識道程(사유봉식도정) : 꿀벌로 하여금 길[여정]을 알게 하다. ‘遊蜂’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꿀벌을 가리키는 말이고, ‘道程’은 여행 경로나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心(심) : 마음, 생각.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甘行(감행) : 기꺼이 가다. ‘甘’은 ‘달게, 기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百里遠(백리원) : 백 리 멀리까지. 難能脚走(난능각주) : 걸어서 가기가 어렵다, 걸어서 갈 수가 없다. / 以香迎(이향영) : 향기로 맞이하다, 향기로 마중하다.   [직역] 꽃의 마중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멀리 꿀벌더러 길을 잘 알라고 맘은 백 리 멀리도 달게 가겠지만 발로 갈 수 없어 향기로 마중했지   [한역 노트] 트로트 가수 나훈아씨가 노래하고 작사와 작곡까지 하였던 <잡초>라는 가요의 가사에서 잡초는 발이 없어 님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태헌의 한역(漢譯)] 春...

    • 봄, 이인철

      봄 이인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잡으려 해도 기다리지 않는 봄 그 누구에게나 봄은 머물고 그 누구에게나 봄은 스친다 [태헌의 漢譯(한역)] 春(춘) 不待及時來(부대급시래) 欲挽期必蹉(욕만기필차) 於人春停留(어인춘정류) 於人春掠過(어인춘략과) [주석] * 春(춘) : 봄. 不待(부대) : 기다리지 않다. / 及時(급시) : 때가 되다. / 來(래) : 오다 欲挽(욕만) : 당기려고 하다, 만류하려고 하다. / 期必(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