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위잉~위잉~’ 어김없이 알람 진동이 오두방정을 떤다.
얼른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진동을 멈췄다.
짝꿍이 단잠에서 깰세라, 소리 대신 진동으로 해놨는데… 앗, 실수!

“오늘은 또 어디로 행차하시나?” 건성건성 물어왔다.
“사랑 찾아 길 떠나네~” 알쏭달쏭 답했다.

배낭은 전날에 주섬주섬 꾸려 현관문 앞에다 모셔두었기에
얼린 물통만 꺼내 넣어 살금살금 빠져 나오면 되는데,
잠귀가 밝은 건지, 새벽잠이 없어진 건지… 태클이다.

Q: “뭘 찾아 간다고?”
A: “사랑…”
Q: “아침댓바람부터 어디가 아프요?”
A: “충북 괴산의 ‘사랑산’ 찾아 간다고요!”
Q: “……?!”

고얀 놈 ‘메르스’ 때문에 오늘 역시도 버스좌석은 듬성듬성 비어있다.
도로 역시 평소 주말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뻥 뚫렸다.
어젠 비가 감질나게 내렸다. 오늘은 다시 하늘이 말갛다.
몹쓸 바이러스도 높은 습도엔 맥을 못 춘다던데,
대지를 흠씬 적셔줄 세찬 빗줄기가 그립다.

소백산맥이 지나는 충북 괴산군의 남동부는 온통 산, 산, 산이다.
덕가산(850m), 칠보산(778m), 보개산(780m), 군자산(948m), 낙영산(681m),
도명산(643m), 조봉산(642m)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연봉을 이루고 있다.
‘사랑산(647m)’도 이 山群에 속해 있다.
사랑산은 남쪽 화양구곡을 사이에 두고 도명산과 낙영산을 맞보고 있다.
2009년 6월 20일(토), 장대비를 맞아가며 도명산과 낙영산을 걸었었다.
2015년 6월 21일(일), 만 6년 만에 맞은 편, 사랑산을 찾았다.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사실 ‘사랑산’의 옛이름은 ‘제당산’이다.
괴산의 여러 명산에 묻혀 존재감이 희미했던 산이다.
그러다가 1999년 이 산자락에서 연리목(連理木)이 발견되면서 반전됐다.
수간(樹間)이 가까운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면서 줄기가 맞닿아
한 몸이 되어 버린 현상을 連理木이라 한다.
연리목은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어 흔히 ‘사랑나무’로 불린다.
이에 힌트를 얻은 괴산군은 산이름을 아예 ‘사랑산’으로 바꿔버렸다.

산이름을 바꿔 유명해진 가평 ‘연인산’처럼 ‘사랑산’도 산꾼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이젠 제법 산꾼들 발길이 잦다고 한다.

그런데 괴산군이 엄선한 ‘괴산 35명산’엔 아직 이름이 올라있지 않다.
미처 신경을 못쓴 건가, 아니면 기준 미달일까,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들머리(S)는 괴산군 청천면 사기막리 ‘용추슈퍼’.
날머리(G)는 괴산군 청천면 후영리 ‘용추교’이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는 6.4km, 궤적을 이으니 뜰채 모양이다.
‘사랑’을 가득 건져 올릴 ‘뜰채’ 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용추슈퍼에서 임도를 따라 200m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숲길이 나있다.
이정표가 따로 없다. 무심코 걸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으로 감 잡는다.
산 높이도 만만한데다 이동거리도 짧아서일까, 마음과 몸이 한결 가볍다.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코끼리바위’ 만나 주저앉아 쉬고, ‘코뿔소바위’ 만나 드러눕기도 하고,
‘사랑바위’ 만나 입 맞추며…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기암들이 느긋하게 걸으라 꼬드긴다.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사랑바위’에서의 조망은 끝 간 데 없다.
대야산과 조항산, 군자산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이름모를 산능선이
아스라이 너울거린다. 구름도 분주히 움직인다.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그렇게 여유작작, 가다서다를 거듭하며 사랑산 정상(647m)에 닿았다.
정작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다. 협소해 서 있기도 마땅찮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사방 시야를 가려 지체없이 내려섰다.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사랑산의 마스코트, ‘연리목’을 만나기 위해 북쪽 능선길로 들어섰다.
버벅대며 비탈진 산길을 따라 내려서자, 계류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산꾼들의 웅성거림도 들려왔다.
요상하게 생겨먹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날리느라 법석이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낯설지 않다. 익숙한 자태다.
개업 가게 앞에서 흐느적거리는 꺽다리 바람풍선을 닮아서다.
바로 사랑의 기운을 팍팍 전하는 ‘연리목’이다.

02
그나저나, 사랑이 무슨 죄인가? 연리목을 철조망 안에 가둬 놓았다.
이 나무 틈바구니로 빠져 나가면 아들을 얻는다는 설이 퍼져나가 한때
문전성시?를 이뤄 고육지책으로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이라는데…
어떻게 렌즈를 들이대도 흉물스런 철조망이 귀퉁이에 걸려든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 처마에서 자라고 있는 의상대사의 지팡이 나무 역시
비슷한 이유로 줄곧 쇠창살 신세인 것을…

괴산 '사랑산'에 올라 지극 사랑을...

연리목에서 용세골 방향으로 약 100m 내려오면 용추폭포다.
계류는 널찍한 반석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 옥빛 소(沼)로 곤두박질친다.
폭포는 역시 수량이 넘쳐나 폭포음이 우렁차야 장관인데,
산간계곡도 긴긴 가뭄에는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신발을 벗고 반석에 비스듬히 누운 채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잠시나마 무념의 모드를 유지해 보기 위해서다.
촌음을 다투며 아등바등하던 일상이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이다.

또 한 週, 요동치는 세상 속을 헤엄치기 위한 숨고르기다. 山行은…
용추슈퍼->코끼리바위->사랑바위->독수리바위->사랑산->삼거리봉->연리목->용추폭포->용추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