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우짤란지, 김원준
우짤란지

김원준

엄마 말씀이
자가, 자가
저러다가
우짤란지 모르겠데이
결국엔
크게 다칠낀데
그래, 보라카이
그 높은 이름에 먹칠했지
더 어떤 망칠일 있겠노?
돈, 그기 머라꼬!?

[표준어 버전]
어쩌려는지

엄마 말씀이
쟤가, 쟤가
저러다가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크게 다칠 건데
그래, 보거라
그 높은 이름에 먹칠했지
더 어떤 망칠일 있겠느냐?
돈, 그게 무엇이라고!?

[태헌의 한역]
將如何(장여하)

母曰彼兒吾彼兒(모왈피아오피아)
不知如彼將如何(부지여피장여하)
行行至終局(행행지종국)
庶幾受傷多(서기수상다)
是也請細看(시야청세간)
高名遂蒙瑕(고명수몽하)
誤事焉有甚於此(오사언유심어차)
金錢彼又何物耶(금전피우하물야)

[주석]
* 將如何(장여하) : 장차 어쩔까, 장차 어찌할까?
母曰(모왈) : 어머니가 ~라고 말씀하시다. ‘母曰’ 다음의 모든 내용이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 彼兒(피아) : 저 아이, 쟤. / 吾彼兒(오피아) : 우리 저 아이. ‘吾’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不知(부지) : 알지 못하다, 모르겠다. / 如彼(여피) : 저와 같이, 저와 같아서. 역자가 “저러다가”의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行行(행행) : 가고 가다. 어떤 상태를 지속한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 至終局(종국) : 종국에 이르러, 결국에는.
庶幾(서기) : 거의, 아마. / 受傷多(수상다) : 상처받은 것이 많다, 상처를 많이 입다. ※ 이 구절은 원시의 “크게 다칠낀데”를 다소 의역한 표현이다.
是也(시야) : 옳거니, 그래! / 請細看(청세간) : 자세히 보거라. ‘細’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高名(고명) : 높은 이름. / 遂(수) : 마침내, 드디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蒙瑕(몽하) : 허물을 입다. 원시의 “먹칠했지”를 다소 의역한 표현이다.
誤事(오사) : 일을 그르치다, 그르친 일. / 焉有(언유) : 어찌 ~이 있으랴! / 甚於此(심어차) : 이보다 심하다.
金錢(금전) : 돈. / 彼(피) : 그것. / 又(우) : 또, 도대체. / 何物耶(하물야) : 무슨 물건이냐, 무엇이<더>냐!

[한역의 직역]
장차 어찌할지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저 아이가, 우리 저 아이가
저러다 장차 어찌할지 모르겠다.
가고 가 결국에는
아마 많이 다칠 텐데……
그래, 자세히 보거라!
높은 이름이 마침내 허물을 입었지.
망칠일이 이보다 심한 게 어찌 있겠냐?
돈, 그게 도대체 무슨 물건이라고!?

[한역 노트]
이 시는, 시인이 젊은 시절에 얼마간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상 어느 “엄마”인들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 않을까만, 순리를 거스르는 자식 앞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는 경우 또한 없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엄마의 우려가 그예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을 엄마의 독백으로 들려준 시이다. 무리하게 돈을 좇다 보면 필연적으로 명예를 손상시키기 마련이다.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면서 정작 자기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엄마의 가르침은, 기실 시인이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경책(警策)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꿈꾸는 성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공을 얘기하자면 무엇보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귀”는 보통 ‘부’와 ‘귀’의 병렬이 아니라 ‘부유하면서도 고귀함’, 곧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 데 반해, “공명”은 ‘공이 있고 명예로움’이 아니라 보통 ‘공적(功績)과 명예(名譽)’의 뜻으로 풀이된다는 점이다.

역자는, 좀은 엉뚱하게 잠시 “부귀”는 ‘부’와 ‘귀’의 병렬로, “공명”은 ‘공’과 ‘명’의 병렬로 간주하는 입장에서 이 네 가지를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성공의 척도로 삼아보고자 한다. 사실 부유하면서 고귀한 사람도 있지만, 부유하지만 고귀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또한 고귀하지만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부귀”를 ‘부’와 ‘귀’의 병렬로 보는 것이 그리 무리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어쨌거나 이 부·귀·공·명이라는 네 요소 중에 하나만 제대로 누리거나 이루어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면, 시 속의 “엄마”는 ‘부’를 낮추어 보고 ‘명’을 높게 본 것이므로, 성공에도 격이 있음을 에둘러 얘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세상에는 고귀하기만 하고 공이 없는 사람도 있고, 또 공은 있지만 명예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부유하지 않아도, 고귀하지 않아도, 공이 없어도 명예를 지킬 수는 있다. 이렇게 보자면 성공의 척도 가운데 명예가 가장 윗자리에 놓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높은 이름”, 곧 명예에 먹칠한 것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명예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고귀한 자리에 있는 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돈의 하수인이 된지 이미 오래고, 심지어 명예마저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가 되고 말았으니, “김중배의 다이어 반지가 그렇게도 탐이 났단 말이냐?”와 같은 유(類)의 질책은 그야말로 신파극에서나 만날 수 있을 뿐인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돈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그 “엄마”의 말씀이 얼마나 절실하게 들릴까? 아니, 들리기나 하는 걸까?

이 시를 쓴 김원준 시인은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개인으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족보(族譜)를 보유하고 있으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쳇말로 ‘돈이 되지 않는’ 사설 족보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왔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고, 명예는 분명 이런 분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핏줄이나 조상들에게 시집온 할머니들의 핏줄이 혹시라도 궁금해지는 날에, 심심풀이 삼아 부천에 있는 족보도서관을 한번 찾아가보기 바란다. 거기에 가면 부귀와는 관계없는 공(功) 하나를 분명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9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과 칠언이 섞인 8구의 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짝수구마다 압운하였으며 압운자는 ‘何(하)’·‘多(다)’와 ‘瑕(하)’·‘耶(야)’이다.

2021. 12. 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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