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드틀 친 책들은 읽어 보면, 유명한 구절이나 중요한 깨침을 주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에 읽은 ‘로버트 L 하일브로너’ 교수님의 “세속의 철학자들(Worldly Philosophers)”도 그 부류에 속하는 책인 것 같다.

책의 내용 전체를 옮기기 어려우니, 그 중 2 부분만을 발췌해 본다.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이 알고 있는 경제, 이익, 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발췌부분 1]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이렇게 전통이나 명령이라는 해결책에 따라 자신의 생존 문제를 다루어 왔다. 그리고, 문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는 동안에는 “경제학”이라는 특수 분야가 생겨날 수 없었다. 비록 역사속의 여러 사회가 경제적으로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할지라도, 그 사회가 왕이나 인민 위원들의 지위를 높이고, 대구포와 잘 마모되지 않는 금속을 화폐로 사용하며, 가장 간단한 공산 사회의 방식이나, 고도의 종교적 양심에 따라 물품을 분배했다 해도, 경제 생활이 관습과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뒷 바침해 줄 경제학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자식은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았고, 물건의 생산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을 뿐, 이익의 추구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경제학자는 사회가 각 개인에게 스스로 보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나타난 시장 경제라는 제도적 장치가 개발되고 나서야 출현하게 되었다.

시장 경제의 규칙은 “개인은 자신의 금전적 이득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관습과 명령의 단순성과는 달리,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사회가 잘 돌아갈 지 확신할 수 없으므로 경제학자가 필요해 졌다.

[발췌부분 2]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질적 안락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동 서양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근대에 들어와서야 도입된 것이며, 이익이라는 개념을 동반한다. 과거에도 소수 유력자의 부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부를 향한 전반적 투쟁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 개인 생각>
우리가 추구하는 부와 이익에 대한 추구가 실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해진 것은 불과 200년 이내의 일이다.
그 전의 사람들도 부를 추구했지만, 그것은 특정 부류에 한정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부와 이익에 연결되어 진행되는 현재의 사회는 인간이 가지는 화합과 이해, 상호 배려의 근본 속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200년 정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부와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했던 어리석은 시대로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파트도 살기 좋은 것보다 값이 오르는 것을 중시하고, 학교도 친구와의 우정이나 사재간의 신회 대신에 내신 성적으로 평가하고, 돈이 인격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그리고 그런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 지금 이순간 내가 만들고 있는 세상의 진실을 다시 살펴보고, 내가 마음만 바꾸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실천해 보자

지막으로, 56년 살아보고 깨달은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켜 주어야 할 것은 “성공하는 인생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이었다. 성공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팔자가 정해져 있는 듯 하다), 행복한 인생은 내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