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우물에 내려 가보니 뱀이 소리도 없이 지나간다. 그 뱀은 방금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먹은 듯 배가 불룩했다. 그 옆에는 방금 위기에서 벗어나 목숨이 붙어 있는 개구리 서너 마리가 눈을 깜빡 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우물가에는 잡풀이 우거져 지저분했지만, 농약이 섞여 있거나 병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바가지로 물을 퍼서 두 개의 물통에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가져와서 무쇠 솥에 부어 넣는다.

 

산과 들을 지나 개울을 건너 10리가 족히 되는 학교를 다닐 때, 반은 걷고 반은 뛰어 다녔다. 배가 고플 때는 길 옆에 채소밭에 들어 가 오이 몇 개를 따 먹고 고구마도 캐 먹었다. 밭 주인에게 걸리면 부리나케 도망갔지만, 얼굴을 알아도 신고를 하거나 손해배상 운운하는 소송 같은 건 없었다. 더운 날에는 옷을 입은 채로 개울로 뛰어들어 남녀 학생들끼리 물방울을 튕기며 목욕을 하면서, 붕어와 미꾸라지를 잡았다. 대충 씻고 나와 마르지도 않은 옷을 입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산비탈을 걸어 올라갈 때는 풀 향기와 꽃 냄새에 취해 그냥 주저 앉아 책을 펼치기도 했다.

 

밥상 앞에서 아버지는 젓가락질 하는 법, 천자문을 쓰는 법,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설명해 주시며 잔소리를 했다. 입안 가득 밥을 쑤셔 넣고 수저를 입에 문채로 야단도 맞고 꾸중도 들었다. 엄마 아빠는 학교에서 숙제가 있는지도 묻지 않고, 학교에서 오자 마자 산 너머 밭으로 오라고 하고, 논둑에 풀을 베라고 했다. 두 마리나 되는 송아지는 학교 등록금을 내야 하는 종자돈이 될 것이므로 열심히 돌보고 잘 길러야 했다.

 

체육시간에는 운동장 주변의 잡초를 뽑은 후에야 공을 찰 수 있었고, 미술시간에는 몽당연필이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다 말고, 봉사활동을 간다고 논밭으로 불려 나가기 일쑤였다. 음악시간에는 항상 애국가를 부르고 끝날 때는 교가를 불러야 했다. 음악시간이 끝나면, 소리도 잘 나지 않는 풍금을 두드리며, 다같이 낄낄거리며 노래를 했다.

 

지금 전 국민들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스마트 폰이다. 하루 종일 SNS에서 살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하루 종일 액정화면으로 작은 글씨를 보고 있으니 귀와 눈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면,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30년~50년 전으로 돌아 가자는 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쳐야 할 게 있고 배워야 할 게 있다. 그것이 인성이며 품격이고 교양이다.

 

그런 것들은 하루 아침에 외워지는 게 아니고,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다. 뱃속에서부터 나온 유전인자 DNA와 자라면서 마주한 부모와 이웃과 자연의 힘으로 몸에 배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의 영향력은 물론 이웃 사람들의 삶의 방식, 주변의 산과 들, 자연의 바람과 햇빛, 마을 분위기 등등 한 인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시간이 걸리고 환경이 중요한 것들을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시간과 법으로 가르친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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