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국드라마 팬인 마케팅 매니저가 이렇게 묻는다.

‘부장님, 한국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검은 국수, 그거 뭐예요?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그거,, ’

검은 국수라.. 드라마에서 검은 국수를 자주 보았는데 무엇인지 몰라서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검은 국수가 “짜장면”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국식 중국음식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짜장면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덧붙였다. 어릴 때 졸업식 때 먹던 짜장면부터, 이사할 때 먹는 짜장면, 그리고 첫데이트 때는 왜 짜장면을 먹으면 안 되는지까지 얘기하다 보니 짜장면 하나 가지고도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 역사가 다 나왔다.

말로만 설명하고 마칠 수는 없었다. 다른 직원과도 약속을 잡고 몇일 후 함께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식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무슬림이 아닌 이 매니저는 순정 짜장면을, 무슬림인 다른 직원은 닭고기 짜장면을 주문하였다. 주위를 둘러 보니 손님 중 반 정도는 현지인인 것 같았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사진부터 찍는다. 아마 SNS에 올렸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직장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장면에 대해서도 물어온 적이 있다. 퇴근 후 동그란 식탁과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에 앉아 소주와 함께 고기 같은 것들을 구워먹는 장면 말이다. 자연히 한국의 직장생활과 문화에 대해 얘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직장인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요즘에는 일과 여가의 균형이 강조되며 그런 저녁자리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최근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면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 자리를 거의 갖지 않는 인도네시아 사람에게는 생소한 장면일 수 있다. 한국계 회사에만 25년 넘게 일한 이 매니져에게는 한국드라마 장면과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한국 직장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곧 같이 일하는 한국인 매니져들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필자의 동료들이야 한국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며 한국 사람에 대해서 알 기회가 있겠지만 한국 사람을 만날 일 없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도 때로는 언어공부 한다고, 때로는 그냥 재미있어서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엿보기도 하지 않은가. 드라마나 영화가 해당 나라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드라마는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모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드라마 팬인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다음 작품들을 계속해서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드라마 팬인 동료 직원들도 한국사람도 잘 모르는 드라마 작품명을 줄줄 꿰고 있고, 한국 연예계 소식까지 실시간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인기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의 연애나 결혼 소식이 우리보다도 인도네시아 신문들에 더 크게 보도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에 많이 노출될수록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고 한국사람들도 더 친근하게 느낄 가능성은 커진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근한 대접을 받고 때로는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청을 받게 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 드라마 팬들과 얘기해 보면 극의 내용뿐 아니라 배경이 되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기회가 되면 검은 국수에 대해 물어 보았던 동료 매니져처럼 한국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 놓기도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 드라마가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교보재가 되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인도네시아에 수출되는 셈이긴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인도네시아에서 큰 돈이 되지 않을 수는 있다. 정식 경로를 통해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특정 회차가 방영되면 다음날이면 벌써 인도네시아어 자막을 단 방영본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친근히 느끼면 인도네시아에 다른 한국산 소비재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두 나라간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지면 국가간 무역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시도하는 학자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2001년부터 2011년까지 92개국에 수출한 문화상품의 수출액과 소비재 상품들의 수출액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문화상품 수출액이 100달러 늘어날 때마다 소비재 수출이 412달러 늘어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김윤지, 『박스오피스 경제학』, 2016, 77~84쪽)

같이 일하던 한 현지 직원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 아예 빈 여행가방을 몇 개를 들고 왔다. 인도네시아에는 여행을 다녀올 때 기념품을 사오는 ‘올레 올레(oleh-oleh) 문화가 중요한데, 이 직원이 한국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주위 친구나 지인들이 한국 물건들을 많이 부탁했기 때문이다. 꼭 드라마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미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위 아는 사람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한국물건을 구할 수 있는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를 만들 때 수출연관효과까지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장금’ 같은 우리나라 시대극이 중동에서 통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의 정서와 가치를 잘 담아 드라마를 제작하면 인도네시아건 중동에서건 경쟁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국 드라마를 볼수록 한국을 더 잘 이해하고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한국인’과 ‘한국상품’의 브랜드 가치가 따라서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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