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의 해외파에 대한 믿음은 대단하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최근 소속 팀 경기의 엔트리조차 들지 못하는 날이 늘어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K-리그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과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당장 진출해서 못 뛰는 것도 아니고 좋은 활약을 해 오다 최근 못 나가고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는 선수들이라 염려하지 않는다"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 왔다.

하지만 현실은 허 감독의 기대를 따라주지 않았다.

26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남북대결에서 동원 가능한 해외파를 총출동시키고도 0-0으로 비겼다.

해외파의 경기력은 걱정했던 대로 만족스럽지 못했고, 국내파와 호흡도 삐걱거렸다.

이번 남북대결을 위해 소집된 해외파는 잉글랜드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토트넘), 설기현(풀럼), 김두현(웨스트브로미치)을 비롯해 일본 J-리그의 김남일(빗셀 고베), 러시아 리그의 오범석(사마라FC) 등 여섯 명이다.

이중 김두현만 교체 출전했을 뿐 나머지는 선발로 나섰다.

지난달 6일 서울에서 치른 투르크메니스탄과 남아공월드컵 예선 1차전(4-0 승)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허 감독은 김두현만 전반 39분 교체 투입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선발로 내보냈다.

이미 대표팀 소집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 해외파는 출전기회가 보장된 셈이다.

하지만 해외파의 경기력과 국내파와 호흡은 허 감독의 기대처럼 원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영표와 설기현, 김두현은 23일 대표팀에 합류했고, 박지성은 경기 이틀 전인 24일 오후 상하이에 도착해 25일 최종 훈련 한 차례만 참가하고 경기에 나섰다.

소속팀에서조차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는 데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 등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기량을 보여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며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허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경기 전날 "시차 문제가 있지만 소속팀에서 22일까지 충분히 훈련하고 온 상태다.

본인도 컨디션에 이상이 없다고 한다.

선발 출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박지성의 몸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많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준비 시간이 짧아도 대표팀에서 오래 함께 뛰어와 호흡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던 이영표는 경기 후에는 "수비 조직력을 맞출 시간이 없어 다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해외파는 어느 순간 계륵으로 전락한 듯하다.

안 부를 수도 없고, 일단 불렀으니 경기에 안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에 스스로 갇힌 모습이다.

허 감독은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선수 선발은 이름값이 아닌 실력 위주로 할 것이며, 선발 라인업은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로 결정할 것"이라며 누누이 강조해 왔다.

하지만 해외파에 대해서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해외파 때문에 그 동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왔던 일부 국내파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앞으로 3차 예선 남은 경기는 물론 최종예선 때도 해외파가 국내파와 호흡을 맞춰볼 준비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해외파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상하이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