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붉은 악마'는 한국 시민사회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그라운드 위의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16강 진출로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면붉은 악마들은 그라운드 밖에서 우리 국민의 축구사랑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붉은 악마는 14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본선 D조 마지막 경기에서 90분간 끊임없는 박수와 합창, 구호제창으로 버거운 상대와 맞선 한국대표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광화문에서, 대학로에서, 여의도에서 초여름밤을 붉게 물들인 또다른 200만 붉은악마들의 응원과 사고없는 축제는 세계 축구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와 어린학생부터 투혼을 보여준 선수들, 길거리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외치던 생면부지의 형제자매.군인.경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미 한마음이었다"며"이 모든 것은 우리의 억눌렸던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제거할 수 있었던 한 편의 씻김굿"이라는 붉은악마 신인철 회장의 단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모든 정치와 종교,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축구를 통해 결집한 붉은 악마의 역사속에서 한단계 성장한 한국 시민사회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 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PC통신의 축구 동호회원들이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이란 이름으로 대표팀의 경기마다 단체관람을 한 것이 붉은악마의 시작이었다. 200여명의 초기 회원으로 출발한 이들이 5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10만여명의회원을 거느리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축구 선진국에서나 볼 수있었던 참여적인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붉은 악마의 원년 회원인 홍상혁씨는 "붉은 악마가 추구한 응원 방식은 `축구를축구답게 즐기는' 방법으로 선수들과의 교감을 통해 선수들은 경기력을 극대화시키고 관람하는 팬들도 선수들의 흥분을 느끼는 것"이라며 "이같은 응원 방식은 기존의관람 문화를 제치고 축구 응원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스탠드에 앉아 박수만 치며 치어리더를 바라보는 소극적인 응원에서 `12번째 선수'가 돼 선수들과 하나가 되는 적극적인 응원을 도입했다는 것. 붉은 악마를 `축구에 미친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하던 기성세대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붉은 악마의 응원방식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둘씩 국가대표팀 경기에스스로 붉은 옷을 입고 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전국의 국민들은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악마가 됐다. "사상과 종교, 지역과 빈부차가 `대한민국'이라는 용광로속에 녹아들어 하나됨을 경험했다"는 붉은악마 회장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축구를 통해, 붉은악마로 하나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