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토는 뜨고 나카타는 졌다.' 9일 그라운드 위의 `러-일 전쟁'을 승리를 이끈 일본대표팀의 원동력은 나카타히데토시(파르마)가 아닌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날)였다. 플레이메이커 나카타의 공격 기여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자 수비형 미드필더 이나모토의 활동반경을 넓혀준 것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일본은 사상 첫 승리를엮어냈다. 나카타의 수비 가담률을 높이면서 볼컨트롤이 좋고 스피드가 빼어난 이나모토의속공 플레이를 살린 데서 16강의 해법을 찾은 셈이다. 이나모토 카드는 벨기에와의 H조 개막전에 이어 이날 러시아전에서 그 효능을발휘했다. 전반 4분 중앙 침투에 이은 중거리슛으로 포문을 연 이나모토는 시종 상대 공격에 발이 묵인 나카타를 대신해 공격의 시발점임을 `자처'하며 공수를 넘나들었다. 수비시 포백으로 내려가 플랫스리(flat3)의 밸런스를 유지했고 공격시엔 빠르고정확한 롱패스를 투톱 스즈키 다카유키(가시마)의 머리에 떨궈줬으며 이마저 여의치않을 경우 직접 상대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가 위력적인 슈팅을 날렸다. 나카타 마크에 치중하던 러시아는 허를 찔린 셈이었고, 결국 왼쪽 크로스와 아크부근 원터치 스루패스에 이은 선제골도 이나모토의 사전 침투를 막지 못한 결과였다. 반면 나카타는 예전의 날카로운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해 대조를 이뤘다. 나카타는 이날도 알렉세이 스메르틴(보르도) 등 전담마크맨에 막히는 바람에 2선에서의 볼배급을 제대로 못해 세계 5위의 몸값을 무색케했다. 크로스 패스도 날카로운 맛이 없었고 이탈리아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답지 않게몸싸움에도 밀렸다. 결과론적이지만 이나모토의 부상은 나카타를 `계륵'으로 보고 당초 엔트리에서그를 제외하려던 트루시에 감독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나모토 카드로 첫 승의 갈증을 푼 일본의 전술은 따라서 단기 전략 차원에서도 이나모토 중심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나카타는 상대에게 미치는 존재가치를 감안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그대로 두되공격 2선에서의 배급과 끝마무리를 짓는 중책은 이나모토의 몫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이제 일본축구의 `권력'은 나카타에서 이나모토로 확실히 움직이고 있다. (요코하마=연합뉴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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